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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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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 오영환 의원 "국가 대신해 달려가는 영웅들, 최고 준비 갖춰진 상태에서 임무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들고파"
"내가 현장에서 소방관들과 함께 일을 할 때는 순직한 소방관들의 사명을 이어받아 노력해 나가는 것으로 슬픔이나 비통함을 달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분들의 노력·헌신·희생을 사회에서 책임있게 바꿔나가야 하는 입장에 서서 그분들이 느끼는 슬픔에 대해 너무도 큰 자책감·죄책감·무력감·자괴감·미안함을 느낀다. 그런 부분들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오영환(36)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표정은 무거웠다. 88년생, 서른셋 젊은 나이에 최초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사회적으로는 '승승장구'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을 떠올렸다. 오 의원은 자신이 국회의원이 된 후 3년 동안 10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면서 "의정활동을 시작한 뒤 안장할 때 지켜봤던 모든 앞서간 선배 동료 후배들을 보면서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막지 못하는 사고들이 있구나 느꼈고, 그러면서도 막지 못한 것에 죄송하고, 견디기 힘든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감정이 북받친 듯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이슬기기자 9904sul@

오 의원은 어린 시절은 물론 청년이 되고 나서도 정치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소방관만 하고 싶었고, 그래서 군대도 소방서로 (의무 소방) 갈 정도로 직접 사람을 구조하는 게 꿈이었다"면서 "오로지 현장의 삶에 만족하고 사명감을 갖는 것이 자랑스러운 평범한 청년이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화재·사고현장에서 "구하는 사람보다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을 봤다"고 했다. 희생자와 순직하는 소방관·구조대원들을 보면서 '조금만 환경이 달랐더라면, 더 안전을 고려한 설계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면 이 사람들은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점점 쌓였다. 세월호 참사 후 후속조치로 단행된 '소방방재청 해체'를 계기로 소방직 국가직 전환 등의 요구사항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선 배경이다. 비록 소방방재청이 현장 상황과 실태도 모르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조직이었지만 그나마 전국 소방을 묶을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져 현장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는 게 오 의원의 생각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달라는 오 의원의 1인 시위가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꿨다. 1인 시위를 지켜보던 민주당이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오 의원은 "(영입) 당시에는 제가 헬기를 타던 시절이었는데, 다른 지역 구조대에서 항공기를 타던 동료 대원들이 숨져 수색을 하러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라면서 "나는 현장 밖에 근무한 적 없는 구조대원이고 동료들이 하던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면서 거절했지만 민주당에서 '여러 후보군을 검토한 끝에 당신이 소방관 출신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발탁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해 의무감으로 수락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를 정치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문재인 정부가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을 하면서 2만여 명의 인력을 고용한 것이라고 했다.

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앙119 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 항공대원일때 모습. 오 의원은 "소방관일 때 온전히 사명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도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더 큰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그에 따르는 무게감과 더 큰책임감, 더 큰 의무감을 체감한다"고 했다. 오영환 의원실 제공.

국회의원이 된 그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에 주력했다.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 1호 법안으로 화재에 취약한 건축 단열재를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 의원은 "2020년 한익스프레스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 사고로 38명이 사망했는데, 그게 정말 가슴아픈 비극인 동시에 너무 원통한 부분"이라며 "수십 년 동안 냉동창고 화재 사고가 너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2008년 코리아 냉동창고 화재사건 등 유사사고가 많이 있었는데 원인으로 지목된 우레탄 폼은 계속해 빈틈없이 발라져 있었다면서 "그러면 불이 났을 때 급격한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스프링쿨러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수없는 지적에도 경제성과 시공의 편리성을 원하는 건설업체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어떤 정부도 규제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 법 하나만 해도 수백·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고 너무 빨리 통과돼 저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법이었는데 그 법이 시행되기 전에 지어지고 있던 건축물에는 소급 적용이 안 됐고, 그중 한 곳(평택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화재 사고가 나 진압하던 소방관 3명이 순직한 사건도 있었다"면서 "내가 더 빨리 법을 바꿨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동료들의 희생을 보며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못 버티겠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했다.

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이슬기기자 9904sul@

그는 "제가 의정활동을 한 3년간 순직한 소방관이 10여 명"이라며 "지난 2017년 이후 순직하신 분들 유가족 분들에게 항상 명절마다 선물과 함께 손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처음에는 10여 분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2배로 늘어났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유가족들의 얼굴이 기억나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잊어서도 안 되고, 국민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라며 순직 대원들의 이름을 불렀다. (고 김국환 소방관, 고 송성한 소방관, 고 신진규 소방관, 고 김동식 소방관, 고 노명래 소방관, 고 권영달 소방관, 고 이형석 소방관, 고 박수동 소방관, 고 조우찬 소방관, 그리고 전북 김제 화재 사건으로 사망한 고 성공일 소방관.)

그는 최근 순직 소방관들의 국립 현충원 안장을 소급 적용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 의원은 "1981년도에 순직한 서갑상 소방관 선배가 있는데, 같은 일·같은 사명을 가지고 일한 소방관들이 옆에 안장될 수 있게 해달라는 유족의 요구에 따라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불공정과 불평등 해소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오영환 의원이 서울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일 당시 부상자 구조활동을 하는 모습. 오영환 의원실 제공.

그는 소방관의 처우개선이 어디까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소방 임무는 어쩔 수 없이 위험속에 노출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이상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적어도 최고로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임무에 뛰어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끝이 없는 부분"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를 대신해 달려가는 소방관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최고의 인원을 구성하고 최고의 장비, 그리고 최고의 컨디션과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가에게 주어진 의무"라며 "소방관 국가직화의 경우 온전히 인사권이나 예산도 독립해 지방소방청 조직이 독립하고 지휘계통의 일원화가 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사명감과 전문성, 책임감으로 많은 성과를 내고 세상을 더욱 안전하게 바꾸는 데 첫길을 낸, 일조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역할을 요구받고 거기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저의 뿌리이자 근간이자 개인적인 꿈이자 내 본연의 사명은 결국 소방관"이라고 말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소방관서 의원 변신한 오영환..."내 꿈은 결국 소방관" [오늘의 DT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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