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시절 `조순학파` 일군 한국 경제학계 `큰 산`

교수·관료·정치인 다양한 삶
정치권 떠나 충실한 '원로' 역할
秋 "바른 정책 고민 모습 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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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시절 `조순학파` 일군 한국 경제학계 `큰 산`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전 부총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월 26일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재정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복지 증대와 지속 성장의 조건' 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은 한국 경제계·학계의 큰 산이었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별세한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해 이렇게 추모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조 명예교수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이날 타계했다. 향년 94세.

정통 경제학자 출신의 고인은 교수와 관료, 정치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오며 분단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꼽힌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고향인 강릉에서 영어 교사로 교편을 잡으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6·25가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 통역 장교로 발탁됐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선발된다. 당시 그가 가르친 육사 생도 중에는 고(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도 있었다.

1957년 군을 떠나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68년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는 20년 동안의 서울대 교수 시절 '조순 학파'를 이룰 정도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국내 경제학계의 거두로 꼽힌다.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고인과 함께 '경제학 원론'을 같이 쓸 정도로 가까운 제자다. 그러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을 맺은 노태우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은 데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된다.

경제 관료의 길을 걷던 그를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그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 때여서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유의 흰 눈썹 백미(白眉)도 그의 상징이다.

그는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DJ가 정계에 복귀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시장직을 사퇴하며 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했고 양당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98년 재보선에서 강릉을에서 당선되며 국회에도 입성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그는 탈당파를 규합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평당원으로 물러난 그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정치권을 떠난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으며 사회 원로 역할을 해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 씨(92)와 장남 기송·준·건·승주 씨가 있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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