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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환한 영화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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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환한 영화 ’해바라기’


우크라이나 전쟁이 1970년작 영화 '해바라기'를 소환했다.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이 영화가 52년 만에 다시 일본에서 상영중인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질 것이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탈리아군, 우크라이나에 가다

1941년 6월 22일 새벽 독일군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전면 침공했다. 이 전쟁에 무솔리니는 발을 들여놓기로 했다. 6월 30일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파병 제안을 수락했다. 무솔리니는 서둘러 원정군을 꾸렸다. 우선 1개 군단 3개 사단 규모로 편성했다. 총병력은 6만2000명이었다. 이탈리아군은 우크라이나 방면을 맡은 독일군 남부집단군에 배속되었다.

겨울이 닥치자 따뜻한 이탈리아 반도에서 온 병사들은 추위를 이겨내지 못했다. 동사자들이 속출했다. 무솔리니는 더 많은 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원정군은 3개 군단 12개 사단으로 증원됐다. 총 병력은 23만5000명에 달했다. 1943년 10월이 되자 이탈리아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됐다. 헝가리, 루마니아군과 함께 독일 6군의 측면 방어를 맡았다.

이탈리아군은 250㎞에 달하는 긴 전선을 맡았다. 방어선은 얇을 수 밖에 없었다. 12월 1일 소련군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이탈리아군은 필사적으로 소련군의 포위망에서 탈출했다. 그 과정에서 태반이 죽거나 포로가 됐다.

영화 '해바라기'는 이렇게 독소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자전거 도둑'으로 유명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걸작이다. 미국 작곡가 헨리 맨시니의 테마곡도 유명하다. 무대는 우크라이나다.

◇반전·평화의 영화

나폴리에 살던 조반나(소피아 로렌 분)는 밀라노에서 온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와 사랑에 빠진다. 징집을 피하려고 둘은 결혼을 하지만 결국 안토니오는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난다. 그런데 전쟁은 끝났건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토니오가 우크라이나 돈강 근처에서 낙오됐었다"는 이야기를 안토니오의 전우에게 들은 조반나는 기차를 타고 소련으로 간다.

조반나의 고생스런 여정은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계속된다. 남편의 흔적을 좇아 우크라이나까지 간 조반나의 눈 앞에 끝없이 너른 해바라기 평원이 펼쳐진다. 샛노란 해바라기가 가득찬 들판은 영화의 압권이다. 끝도 없이 피어있는 해바라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태양을 향해 빛나는 해바라기, 조반나의 고독과 슬픔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영상미학의 극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조반나가 해바라기밭에서 만난 현지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해바라기 들판 아래에는 이탈리아와 독일 군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포로들이 가득 묻혀 있어요. 아마 당신 남편도 저 해바라기 아래 묻혔을 겁니다." 군인들의 검붉은 피가 아름다운 해바라기 꽃을 피운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반에 한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러시아 병사에게 "네 주머니에 이 해바라가 씨나 넣어둬라. 너희들이 이 땅에 쓰러지면 (거름이 되어) 해바라기가 자랄 테니"라고 호통을 친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영화에서 조반나는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찾았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본다. 생명을 구해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해 자식까지 낳은 남편을 만나고는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태양만을 쳐다보고 자라는 해바라기처럼 조반나는 한 남자만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결국 전쟁의 상흔으로 남았다.

영화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촬영됐다. 수도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500㎞ 떨어져 있다. 해마다 7월말이나 8월초 이 곳에 가면 광대한 '해바라기의 바다'를 볼 수 있다. 영화는 1970년 개봉됐지만 한국에선 상영이 불허됐었다. 적성국가인 소련에서 촬영됐고 소련의 발전상이 과하게 담겼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982년이 되어서야 국내 상영이 허가됐다. 남편 역을 연기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되어 복무했었다. 집단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한 경험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國花)다.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이 하늘색과 노랑인 까닭도 해바라기와 관계가 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노란 해바라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해바라기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관상용 꽃으로 재배됐다. 러시아 사람들은 해바라기를 개량해 식용으로 썼다. 해바라기 씨와 해바라기 기름이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흑토에서 잘 자랐다.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의 나라'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유 생산·수출 국가다. 전 세계 수출량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해바라기유 수출로 매년 47억달러(약 5조6900억원)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2위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는 전 세계 수출량의 80%를 점하고 있다. 3위는 아르헨티나다.

해바라기유는 가장 경제적인 식용유다. 옥수수유 등 다른 식물성 기름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심장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한 기름'으로 불려진다. 해바라씨 볶음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스낵이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봅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등이다. 즉, 사랑과 기다림과 희망을 상징하는 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해바라기를 들고 평화를 기원하는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반세기 만에 재상영된 '해바라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영화 '해바라기'가 52년 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가운데서 전쟁의 비극을 전달하는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선 이 영화가 재상영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재상영을 기획한 배급사는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듣고 "지금이 이 영화를 다시 봐야할 때"라고 판단해 재상영을 결정했다고 한다.

당초 요코하마, 오사카, 니가타 지역의 3개 극장에서만 상영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일본 전역에서 상영 요청이 밀려들어와 전국으로 상영이 확산 중이다. 홋카이도에서 가고시마현까지 28개 현의 60여개 극장 및 시민회관에서 재상영이 결정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객석을 만석으로 채워 뜨거운 관심을 입증하고 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민이 극장가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본 한 고등학교 교사는 "전쟁의 잔혹함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면서 "우크라이나에 평화로운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배급사 측은 영화 재상영의 수익금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기부할 방침이다.

전쟁이 나면 혹독한 고통을 겪는 쪽은 항상 민초들이다.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쟁 난민이 1000만명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냉혹한 현실이다.

노란 해바라기 꽃이 눈물짓고 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해바라기 밭은 폐허로 변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국제사회는 힘을 모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와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는 그 날을 기원해 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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