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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 해법은 `핀란드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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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 해법은 `핀란드화`? 가능할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배치했던 병력 일부를 철수하면서 전쟁 발발 우려감이 완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전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가 국제 외교가에서 거론되고 있다. 주목 받는 '핀란드화'가 어떤 내용이고, 과연 이 방식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 묘수가 될 수 있을 지 살펴본다.

◇마크롱이 제시한 '핀란드화'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세계 매체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놓고 다양한 해설을 쏟아냈다. 이 중 눈길이 가장 많이 간 대목이 '핀란드화'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견에서 핀란드를 언급했다.

'핀란드화가 우크라이나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크롱 대통령은 "그것도 고려중인 한가지 방안"이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법으로 '핀란드화'를 제안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교류할 수 있는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자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불편한 심기를 의식해 나중에 이 발언을 취소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해법을 모색하는 사람들 머리에는 이미 '핀란드화'는 자리를 잡았다.

국제 외교가에서 거론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라는 말은 중립화를 뜻한다. 우선 중립국과 중립화의 차이를 살펴보자. 중립국과 중립화는 엄밀하게 보면 다르다.

중립국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중립국이 되기 위해선 주변국 승인이 필요하다. 주변 강대국들이 중립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국제조약을 맺어야 한다. 또한 중립국 지위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을 스스로 갖는다.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징병제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은 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했지만 스위스는 막아냈다. 방위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에다 40여만명의 병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2013년 스위스에서 징병제 폐지 국민투표가 실시됐으나 다수의 반대로 부결됐다. 중립국이란 '무기를 갖는 평화'인 것이다.

그밖에 오스트리아가 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는 미·소·영·프 4개국의 점령을 받았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권력을 잡으면서 소련은 서방세계와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쪽으로 대외정책을 수정했다. 오스트리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영세중립국'이 되겠다고 호소하면서 1955년 4개국 점령군의 철군을 관철시켰고 중립국 법률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내면서 오스트리아의 중립은 달성됐다.

'중립화'라는 것은 중립적 정책을 취한다는 의미다. 핀란드는 이 쪽이다. 핀란드는 중립화 노선으로 생존을 지켜왔다.

◇북유럽 소국의 생존전략

핀란드(Finland)란 '핀족의 땅'이란 뜻이다. 핀족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우랄 어족 계통의 민족이다. 핀족들은 12세기 이웃나라 스웨덴의 침략을 받았다. 1155년 스웨덴왕 에리크 9세가 '북방십자군'이란 이름 아래 핀란드를 침공했다. 이후 오랜 기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무려 600여년이다.

그 다음 주인은 제정 러시아였다.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1808년 핀란드를 침범했다. 1809년부터 100년여 동안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들어 유럽에 민족주의 바람이 몰아쳤다. 핀란드 사람들의 독립 의지가 강해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혼란을 이용해 핀란드는 독립을 이뤄냈다. 하지만 스웨덴과 소련 두 나라의 압박으로 불안한 독립이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이 맺어졌다. 조약에는 유럽 여러 나라의 영토를 독일과 소련 두 나라가 분할해 갖자는 비밀조항이 담겨 있었다. 스탈린은 핀란드가 소련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공격으로 전쟁이 터졌다. 당시의 가혹한 겨울 날씨 때문에 '겨울전쟁'이라 불린다. 핀란드는 다음해 3월까지 버텼으나 평화조약을 맺고 휴전했다. 영토의 11%를 소련에 넘겨줬다.

1년여 후인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핀란드는 독일의 동맹군이 되어 소련을 공격했다. '제2차 소련-핀란드 전쟁'이다. 하지만 독소 전쟁의 전세가 역전되어 독일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1944년 소련군은 핀란드로 진격했다. 핀란드는 독일과 맺었던 동맹을 파기하고 이번에는 독일군을 공격했다. 두 강대국에 낀 핀란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종전 후인 1948년 핀란드는 소련과 우호협력 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을 위협하는 나라에 영토를 제공하지 않으며,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반대급부로 소련은 핀란드의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하고 내정 불간섭을 약속했다. 이후 핀란드는 서유럽도, 동유럽도 아닌 중립적 노선을 걷게 됐다. 여기서 '핀란드화'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핀란드화'란 강대국에 순종하면서 독립을 보장받는 외교 안보 노선을 말한다. 덕분에 핀란드는 국가로 존속했다.

◇'핀란드화', 해법될 수 있을까

이런 중립화 정책으로 냉전시대 핀란드는 동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운명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경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감시 하의 자유였다. 반(反)소련으로 간주되는 정치세력은 원칙적으로 배제됐고 소련에 비판적인 표현은 자제했다. 학교에선 핀란드 역사를 자유롭게 가르칠 수 없었다.

이는 핀란드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핀란드인들은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상당히 싫어한다. 이 용어가 저항이 아닌 순종을 떠올리게 하고, 한정된 주권 예속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소련의 붕괴로 핀란드는 스스로의 운명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1995년 핀란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핀란드화'는 더 이상 핀란드에 적용되지 않는 용어가 됐다.

이를 살펴보면 '핀란드화'는 생존을 위해 선택한 노선이었다. 예속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지만 '핀란드화'가 효과적인 생존전략인 점은 분명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핀란드화'는 핀란드인의 '강함'과 '지혜'를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핀란드화'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겐 '알아서 기는 것'은 치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쟁을 막는 일이다.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을 벌이면 우크라이나는 대재앙이다.

전쟁이 안 터진다 해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기존 유럽 안보 체계에 변화가 일 것을 예고한다. 따라서 지정학적 중간국으로서 우크라이나는 유연하고 실리적 전략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뾰족한 선택지가 없다면 '중립화'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 방법으로 보인다. 약소국의 냉혹한 현실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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