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DT현장] 사과의 상호작용](http://contents.dt.co.kr/images/202112/2021122802102269044001[1].jpg "[DT현장] 사과의 상호작용")
김건희씨는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사과했다. 자신을 향한 여러 의혹 중에서 허위경력 기재에 대한 것만 일부 인정했다. 그는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 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부디 용서해주시라"고 했다. 그리고 사과의 대부분은 남편인 윤 후보를 감싸는데 주력했다. 김건희씨는 "잘못한 저 김건희를 욕하시더라도 그동안 너무나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온 남편에 대한 마음 만큼은 거두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저는 남편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윤석열 앞에 제 허물이 너무나도 부끄럽다"고 했다. 또 "결혼 이후 남편이 겪는 모든 고통이 다 저의 탓으로 생각됐다"며 "제가 없어져야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김건희씨의 사과가 국민을 향한 것인지 자신 때문에 대선 가도에 타격을 받게 된 남편을 향한 것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 측은 사과 이튿날인 27일 선대위 차원의 논평을 내고 "김건희 씨가 대국민 사과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국민에 대한 죄송함이 아니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큰 일'을 앞둔 남편 윤 후보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평가했다.
알맹이도 부족했다. 김건희씨가 허위경력 기재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질의응답도 없이 기자회견장을 떠났고, 국민의힘 선대위가 질문을 대신 받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력을 허위로 작성했는지는 서면자료로 대체했다. 서면자료에는 대체로 각종 의혹 대부분에 대해 "부정확한 기재였다"고만 설명했다. 고의를 동반한 허위로 기재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논란의 책임을 '오해를 한 상대'에게 떠넘기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허위이력 논란에 대해 잘못을 인정했지만, 본인의 허위이력을 비롯한 여러 의혹에 대한 실체적 규명과 책임은 찾아 볼 수 없어 유감스럽다"면서 "알맹이가 빠진 '덮어놓고 사과'로는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과는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으로 사과를 했다고 완성되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에드윈 바티스텔라 교수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문예출판사)이라는 책을 보면 사과에 필요한 다섯 가지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속죄와 배상 제시다. 김건희씨의 사과는 유감을 표명하고 비판을 수용했지만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속죄는 부족했다.
또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이라는 측면에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김건희씨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대선후보의 부인인 김건희씨에게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대통령 부인으로서 갖춰야 할 품격과 자질, 자격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건희씨는 혹여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돼 자신이 영부인이 되더라도 아내로서만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럼 공석인 듯 공석 아닌 공석 같은 영부인을 만들겠다는 의미인지 선뜻 수긍이 가질 않는다.
바티스텔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과는 '과정'이다. 사과요구, 사과, 응답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면서 "마지막 단계인 '응답'은 피해자의 영역이다. 결국 완전한 사과는 피해자의 용서까지 포함되고, 그걸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사과의 타이밍도 한참 늦었다. 언론과 정치권의 수많은 의혹에 '잘못이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하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국면으로 접어들자 사과에 나섰다.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시점이다. 바티스텔라 교수가 사과의 기술을 논하기는 했으나 단순한 기교를 넘어서는 예술에 가까운 기술을 요구한다고 했다. 적절한 시점의 적절한 사과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사과는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말처럼 김건희씨가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는 평가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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