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소련 붕괴 30년...동토의 제국이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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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소련 붕괴 30년...동토의 제국이 부활한다
30년 전인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사임으로 '세계 최대 제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30년 후, 후계 국가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부활'의 야망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벼랑끝 대치'를 잘 보여준다. 이제 푸틴은 서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토의 제국'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최대 제국'의 붕괴

30년 전인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의 폴란드 국경 근처 벨라베자 숲에 자리잡은 별장. 이 곳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타니슬라프 슈시케비치 벨라루스 대통령이 비밀리에 모였다. 이날 슬라브 민족의 세 지도자들은 소련 해체 및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에 합의하는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다. 같은 날 미국의 조지 허버트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소련 붕괴 최후의 순간은 크리스마스인 1991년 12월 25일에 일어났다. 소련 최고 지도자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 TV를 통해 사임 연설을 했다. 소련 최초이자 최후의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고별 연설을 한 것이다. 소련의 3억 인구가 지켜봤다. 그 중에는 후에 강력한 권력자가 된 푸틴도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퇴임과 더불어 세계 지도에서 소련이란 나라는 사라졌다. 연설이 끝나고 30분이 채 되지않아 크렘린궁에 펄럭이던 소련의 붉은 깃발은 내려갔다. 대신 백(白)·청(靑)·홍(紅) 삼색의 새로운 러시아 국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통해 소련의 수명을 연장하려 했던 고르바초프는 패배했다. 소련 공산당의 권위는 사라졌고 소련을 구성했던 모든 공화국은 독립 주권 국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면서 미국과 경쟁했던 초강대국의 몰락은 20세기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다.

◇'21세기 차르' 푸틴의 등장

새로운 러시아연방의 초대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이었다. 그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러시아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에서 다양한 제품이 대거 수입됐다. 극심했던 생필품 부족은 완화됐다.

그러나 끔찍한 인플레이션이 왔다. 1992년 인플레이션은 무려 2600%에 달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대부분의 러시아인에겐 무자비한 것이었다. 임금 체불은 일상의 일이 됐다. 실업률이 치솟고 범죄가 급증했다. '알콜중독자' 대통령에 발을 맞추기라도 하듯 러시아는 비틀거렸다. 혼란의 90년대였다. 삶과 의식에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열망했다.

2000년 5월, 47세의 젊은 푸틴이 두 번째 러시아 대통령이 됐다. '스트롱맨' 푸틴이 외친 것은 '강한 러시아'의 재건이었다. 먼저 푸틴은 분리주의 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3년 석유회사 '유코스'의 창업자로 '석유왕'으로 불렸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체포되면서 신호탄이 쏘아졌다. 신흥 대기업들은 일제히 푸틴에게 고개를 숙였다.

푸틴은 서방기업들의 탐욕에도 제동을 걸었다. 국가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러시아식 '국가 자본주의'의 윤곽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 다음 푸틴은 글로벌 전략으로 눈을 돌렸다. 2001년 7월 16일 러시아는 중국과 손을 잡았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푸틴과 악수를 나누고 중·러 우호협력조약에 서명했다.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중·소분쟁이 해소되고 이제 양국 관계는 군사동맹 성격을 지니게 됐다. 이는 유라시아의 지정학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어 푸틴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에 병합시키면서 서방과의 힘겨루기를 본격화했다. 푸틴의 시야는 중동과 아프리카로 확장된다. 전환점은 2015년 9월 시리아 공습이었다. 푸틴은 시리아에서 반체제 세력을 공습함으로써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푸틴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실천력, 자국 이익 최우선주의다. 그에게도 공과(功過)는 존재한다. 공(功)은 7이고, 과(過)는 3이다. 국민들은 그런 푸틴에게 '차르(러시아 황제)' 왕관을 선물했다. '21세기 차르' 푸틴은 강대국 소련과 옛 러시아 제국을 합친 '대(大)러시아' 구축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한다면서 2036년까지 초장기 집권의 길을 터놓았다. 사실상 종신집권이다.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

푸틴은 '대러시아' 를 통해 미국의 일극 패권체제를 타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흔들림 없이 밀고나가겠다는 각오다. 현 단계에선 우크라이나가 '열쇠'다.

슬라브 형제국으로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안고 있다. 러시아 발상지가 키예프 공국이듯 양국은 같은 뿌리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친(親)러시아와 친유럽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 이민자들이 많아 언어도, 생활습관도 러시아 그대로이다. 서부는 오랫동안 폴란드 영향 하에 있던 탓에 유럽과 친화성이 높다. 동부에선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코미디 배우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승리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새 정부는 반(反)러시아 경향이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토 가입은 푸틴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마지노 선(線)'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우크라이나 영토에 서방의 미사일이 배치될 것을 우려한다. 미사일은 7~10분 안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면 5분으로 줄어든다.

지난 7일(현지시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긴장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화상회담을 가졌지만 양측은 평행선만 그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나토의 동진(東進)과 관련이 깊다. 미국은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버렸다. 푸틴은 옛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대거 가입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제 푸틴은 나토의 추가적 동진을 힘으로 막으려 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군대를 모아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 4개월 동안 17만5000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50㎞ 이내에 배치했다.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할 확률은 낮지만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충돌이 될 것이다.

◇소련은 안 죽었다, 푸틴의 선전포고

현재 미국, 유럽 등 서방과 러시아의 긴장은 전방위로 고조되고 있다. 푸틴은 병력 배치에 이어 유럽행 가스관의 밸브도 잠궈버렸다. 당장 에너지가 필요한 유럽은 전전긍긍이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여파로 유럽 내 가스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유럽을 패닉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이어 푸틴은 지난 21일 서방이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등 비우호적 행동을 계속하면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강력한 제재를 경고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상황이 악화할 경우 스마트폰, 자동차 부품 등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푸틴에겐 먹히지 않을 것이다. 22일에는 내년 초 미국 및 나토와 대면 회담을 갖고 '안전 보장' 문제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이번 기회에 자국이 보유한 모든 힘과 능력을 동원할 작정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슈퍼 파워'의 등장을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야심이다. 불행히도 미국과 서방에겐 마땅한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주도권을 빼앗겼다.

지난 12월 21일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생일이었다. 스탈린은 1879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이던 조지아(옛 그루지아)의 고리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역사에서 그보다 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강대국으로 팽창시킨 인물은 없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붉은 성벽 앞(붉은 광장 서측)에 안장되어 있다.

이날 스탈린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소련 국기와 꽃다발을 들고온 지지자들이 붉은 광장에 모여들었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스탈린과 소련 시절을 추억하는 행사가 열렸다.

'스탈린주의'에 맞서 싸웠던 러시아의 시인이자 영화감독 예브게니 옙투셴코(1932~2017년)는 스탈린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경고했었다. "스탈린이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라."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스탈린은 다시 기억되고, 푸틴의 몸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동시에 '제국의 부활'도 시동이 걸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라를 초강대국으로 회복시키려는 푸틴의 시도야 러시아 국민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판의 정치쇼가 아닌, 옳은 길로 가야한다. 소련이 왜 붕괴했는지, 역사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러시아 파시즘의 탄생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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