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오스만튀르크, 제국內 기독교도 핍박… 1차대전 3년 동안 최대 150만명 학살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오스만튀르크, 제국內 기독교도 핍박… 1차대전 3년 동안 최대 150만명 학살
수도 예레반의 치체르나카베르드(Tsitsernakaberd)언덕에 있는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북방 프리즘 - 아르메니아: 코냑과 제노사이드(3)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

비잔틴 제국을 붕괴시킨 오스만튀르크는 16세기부터 아르메니아를 지배하였다. 오스만튀르크는 제국 내에 기독교도를 핍박하여 수차례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봉기를 하였고 이때마다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당하였다. 1800년대 중반에는 적게는 10만 많게는 3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사망한 하미디안 대학살(Hamidian Massacres)이 자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1909년 술탄 압뒬 하미트 2세(Abdul Hamid II) 시기에 자행된 아다나 대학살(Adana Massacre)로 2만에서 2만 5천여 명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이 사망하였다.

이후 세계 제 1차 대전 기간인 1915∼1917 기간에 오스만튀르크는 최소 80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하였다.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 혹은 하미드 대학살(Hamidian Massacres)로 불리는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은 오스만튀르크 정부의 계획적인 아르메니아인 인종청소이다. 오스만튀르크를 계승하여 1923년에 건국한 터키공화국은 현재까지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인하며 사망자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1914년부터 시작된 1차 대전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함께 동맹을 맺고 참전하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코카서스 일대에서 일부 아르메니아인이 러시아를 도와 터키에 대항하였다. 이에 오스만튀르크는 제국 내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이 독립을 위해 적국인 러시아와 내통할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다. 1915년 4월 오스만튀르크는 앙카라(Ankara)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등 대도시에서 아르메니아 지도자들을 체포해 살해하였다. 한 달 뒤 5월 오스만튀르크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아르메니아인을 터키 밖으로 축출하면서 대학살로 이어졌다. 1916년에도 2차 재배치로 약 20만 명이 또다시 추방되어 대부분 사망하였다.

오스만튀르크는 아르메니아 성인남성을 징발하여 군대에서 노동력으로 활용한 뒤 학살하였다. 여성, 어린이 및 노약자는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하였는데 인솔한 오스만튀르크 군대는 식량을 갈취하여 대부분은 이동 중 질병과 기아로 사망하고 젊은 여성에 대한 강간 등 반인륜적 행위를 하였다. 이외에도 오스만튀르크는 10-20만 명의 아르메니아 여성과 아동을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무슬림 가정의 하인으로 부리는 반인륜적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오스만튀르크의 대학살로 아나톨리아에 오래 동안 정착하였던 200만 명의 아르메니아 기독교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그리스정교 신자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여파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실존하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였다.

대표적으로 1916년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조사하여 60여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사망하였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토인비가 이러한 주장을 내놓은 이후 1923년까지 대학살은 이어져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와 전 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계 후손들은 4월 24일을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날(Day of the Armenian Genocide)로 명명하여 희생자를 기리고, 터키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큰 충격을 받고 1943년 전쟁 등을 통한 조직적인 대학살을 지칭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어휘를 만들고 국제적 차원에서 제노사이드 주동자를 처벌할 수 있는 협약을 제안하였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제노사이드는 곧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의 대학살로 인식되었다. 1951년 1월 UN은 국가, 인종, 종교를 이유로한 제노사이드 행위의 처벌을 담은 협약을 제정하였다. 2001년 5월 유럽 48개국이 가입한 통합기구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20세기 초 오스만튀르크가 자행한 제노사이드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발표하였다. 2015년 4월 유럽연합의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역시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작성하였다.

2021년 4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바이든(Joe Biden) 대통령 1차 대전 기간 150만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미국은 그 동안 터키와의 관계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였는데, 바이든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으로 미국내 아르메니아 공동체의 오랜 로비가 결실을 맺었다. 2021년 기준 세계적으로 33개 국가가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만튀르크를 계승한 터키 정부는 여전히 아르메니아인의 재배치는 적법한 조치였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고 여하간의 사과와 보상조치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점차 사실로 굳어지면서 터키에서도 여론의 변화가 일고 있다. 2021년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독립적인 싱크탱크인 경제외교정책연구센터(Centre for Economics and Foreign Policy Studies)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4%는 터키정부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사과 혹은 유감을 표명하였다. 이외에 나머지 46%는 응답을 거부하거나 터키정부의 입장을 반복하였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