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파벌`이 민심 누른 자민당 총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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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파벌`이 민심 누른 자민당 총재 선거
일본의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끝났다.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내 각 파벌들은 이해득실의 주판알을 굴렸다. 선거 결과 자민당 총재실의 주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정조회장으로 정해졌다. 당초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고노 다로(河野太朗) 행정개혁담당상의 당선이 유력했으나 기시다는 파벌의 힘을 빌려 그를 꺾어버렸다. 파벌이 민심을 눌러버린 셈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소속의 국회의원 표와 지방의원을 포함한 당원·당우 표를 합산해 이뤄진다.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83표, 전국 당원·당우 383표를 합한 766표 중 과반을 얻는 후보가 총재로 당선된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계파의 동향이다.

총재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자민당 파벌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파벌은 이른바 '1955년 체제'가 출범하면서 본격화됐다. 전후(戰後) 일본의 보수 진영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결국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의 일본민주당이 1955년 12월 '보수 대합당'을 하면서 거대정당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창당됐다.

당시 자유당은 '보수 본류', 민주당은 '보수 방류'로 불렸다. 구 자유당·구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자연스럽게 계파를 만들었고, 그들 외에도 경력·신조·정책 등에서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도 모임을 형성하면서 파벌이 형성됐다.

1956년 12월 총재 선거를 계기로 8개 파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이합집산을 거쳐 5대 파벌로 정리된다. 미키 타케오(三木武夫),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후쿠다 타케오(福田赳夫),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등 5명이 이끄는 '삼각대복중(三角大福中)' 5대 파벌이 그것이다. 이들은 합종연횡해 정권을 유지했다. 나중에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가 이끄는 3대 파벌 '안죽궁(安竹宮)'이 새로 등장했다.

현재 자민당에는 7개의 파벌과 1개 그룹이 존재하고 있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 96명을 필두로 아소(麻生)파 53명, 다케시타(竹下)파 52명, 니카이(二階)파 47명, 기시다(岸田)파 46명, 이시바(石破)파 17명, 이시하라(石原)파 10명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무파벌' 그룹은 72명에 이른다.

자민당 파벌은 '당 속의 당'으로 보면 된다. 자민당에는 보수에서 개혁까지 다양한 의원들이 운집해 있다. 이들은 파벌을 만들어 권력투쟁을 벌여왔다. 파벌은 일종의 조그마한 정당이다. 자민당은 이런 파벌들이 모인 연립정권 같은 것이다. 한 파벌에게 다른 파벌은 '적'(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파벌에서 다른 파벌로 실권이 넘어가면 사실상 정권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의 야당, 예를 들면 입법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각 파벌에는 명예회장, 회장, 고문, 사무총장 등 임원들이 있다. 명예회장은 회장이었던 인물이 맡는다. 문자 그대로의 명예직이지만 여전히 파벌 안팎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 회장은 파벌의 보스다. 고문은 회장이나 대표 등에게 조언하는 직이다. 사무총장은 파벌의 자금 관리나 섭외 등의 실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다.

파벌 보스는 공천권, 선거자금 배분 등을 무기로 소속 의원들을 통제한다. 소속 의원들은 파벌에 충성하는 대신 '자리'와 '돈'을 배분받는다. 소속 의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파벌 사무실에 모여 배달된 도시락을 먹으며 동지 의식을 높인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합숙도 한다. 스터디모임을 같이 하면서 정책집을 내기도 한다.

파벌정치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파벌은 자민당에 다양성을 가져다 주었다. 이로써 수많은 정치변동에도 대응할 수 있는 광대한 지지기반을 가진 정당으로 자민당을 발전시켰다. 파벌이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동력인 셈이다.

하지만 파벌정치는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비판받는다. 파벌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소속 의원들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밀실·금권 정치라는 폐단을 만들었다. 파벌 역학의 영향으로 적임자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당 지도부나 총리에 앉게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파벌 논리에 의해 총리의 정치력이 제한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럼에도 파벌에 속해야 동료가 생기고 설 자리도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파벌의 영향력은 과거보다는 약해졌다. 과거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의 개편이 파벌의 약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가 이를 방증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치 과제와 시류를 보고 움직이는 새로운 정치세대와 기존 파벌이 서로 싸우는 총재 선거였다"면서 "결과는 파벌의 우세로 끝났다"고 전했다.

국정에서 집권당이 생각해야 하고 지켜야 할 대상은 전체 국민이다. 파벌이 아니다. 파벌 논리가 아니라 정책력, 비전 등을 판단해 당의 총재와 총리를 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일본 정치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준이 낮으니 갈수록 극우로 기우는 것이다.

자민당이 60년 넘는 긴 세월을 독주하고는 있지만 변화가 있어야 미래를 보장받는다. 기시다는 "총리에 오르면 계파 정치를 탈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파의 덕을 본 그가 이를 실현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여전히 파벌에 휘둘리는 자민당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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