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金 유죄로 드러난 소통부재 文정부의 코메디… 朴정부 댓글보다 심각"

'묘지 순례 쇼' 안한 최재형 前 감사원장… 다른 후보와는 확실한 차별화 행보
검찰 몸 담았던 사람이 공정·정의를 말할 수 있나… 윤석열은 그럴 자격없어
민주당, 10년 벌어놓은 거 1년만에 싹 까먹어… 국힘 후보 나오면 대결구도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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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을 듣는다] "金 유죄로 드러난 소통부재 文정부의 코메디… 朴정부 댓글보다 심각"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고견 인터뷰.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前국회의원


"여러 사람과 밥 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대통령만 되도 대성공이라고 봅니다. 최근 대통령들은 대화가 되지 않았아요. 정치는 대화입니다. 대화를 않는 건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미예요.(…) 월성1호기 원전 조기 폐쇄도 그냥 대통령이 폐쇄하라고 지시하는 방식이었어야 합니다.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는 결국 조작하라는 말과 다름 없지요. 탈원전이 정치적 소신 아니었던가요? 본인이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본인이 지면 되는 겁니다. 그걸 왜 공무원들한테 떠넘겨가지고…."

진보와 보수를 싸잡아 비판하지만 그 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보수적 자유주의자' 이상돈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에게 대선정국 전망과 문재인 정부 평가를 들었다. 그는 학문이 업인 교수지만 특히 '공부하는 교수'로 정평이 나있다. 헌법, 환경법, 사법심사 등 엄정한 법이론가이면서 현실을 반영한 주장은 정치권으로부터 끊임없는 영입제의가 들어오도록 했다. 그의 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예측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경수 경남지사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유죄 확정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이면을 뒤집어 보았다. 사안 자체도 심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추미애 전 장관이 수사의뢰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 아니냐"며 "이 정권 사람들이 얼마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보여준 모습은 코메디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추미애 의원과 중진 여당 의원들도 김경수 지사 역할을 몰랐다는 것은 김경수 지사가 당시 문재인 후보의 이너서클 중에서도 핵심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 교수는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문재인 씨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의심했다"며 "김경수 여론조작은 그보다 더 심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70년 삶을 회고하는 '시대를 걷다, 이상돈 회고록'을 내면서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바랄 게 있다면 '국민과 대화가 가능할 만큼의 교양을 갖춘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리고 책임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몇 번의 만남에서 느낀 내성적, 방임적 성격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 교수는 두 번의 정치 구원투수로 나와 모두 팀을 구했다. 첫 번째는 2012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으로 참여해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지지율이 급락한 이명박 정부 말기였는데, 비대위원으로서 정책비전 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성과를 냈다. 대선에서는 후선에서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며 든든한 힘이 됐다. 다른 한번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제3당 돌풍을 만든 것이다. 당시 안철수 대표와 동행하며 겪었던 일화들도 들려줬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본사 스튜디오에서 가졌다. 인터뷰 내내 이 교수 특유의 호탕한 웃음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김경수 대선 여론조작 유죄 판결이 난 다음 날인 22일 추가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선언 이틀 만에 예상보다 빨리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장에 더 이상 있을래야 있을 수 없게 됐잖아요. 있으면 감사원 자체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할 수 없이 나왔는데, 그래도 감사원장을 사직했으면, 대선이 올해 12월도 아니고 내년 3월이잖아, 몇 달쯤 바깥에 있는 게 정답이라고 봤어요. 조직에 대한 예우도 되고요. 나는 이렇게 기대를 했어요."

-국민의힘에 늦게 합류하면 기존 구도를 깨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는데요.

"경선을 민주당은 9월 초에 끝낸다고 하는데 지금 코로나 유행으로 연기될 수밖에 없게 됐잖아요. 내가 볼 때 국민의힘도 빨리 못한다고요. 그렇다면 일찍 나와서 뭐 할 게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최 전 원장이 확실히 차별화한 것은 있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무얼 한다고 하면 묘지 순례부터 하잖아.(웃음) 그게 다 쇼지. 최 전 원장은 그걸 않더라고."

-최 전 원장이 시간을 두고 국민의힘에 입당해도 됐다고 보십니까.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총장과 최재형 전 원장이 바깥에 있으면 솔직히 경선 흥행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최재형 감사원장이라면 그냥 경선이 안 되게 내버려 두면, '우리 모두 드랍했으니까 와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나는 최재형 원장이 그럴 줄 알았어요. 당내 경선이라는 걸 제가 잘 알잖아요. 아수라장이거든. 그래서 얼마 전 신문칼럼에 미국 얘기 하면서 아래에 조금 할애해서 쓴 얘기가 있어요."

-대선 주자들이 참고해야 할 만한 것이었나요.

"유럽에서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 때인 194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에는 적절한 후보가 없었다고.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유럽에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고수했잖아요. 그 당시 대통령 감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왜 유럽에 개입하느냐는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웬델 윌키라는 선거에 한 번도 나와보지도 않았던 당외 인사가 부상한 거예요. 공화당에선 '이 사람이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이른바 '다크호스(dark horse)'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것이지요. 당시 유력 시사잡지 타임지와 라이프지는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막강했는데, 특히 타임지는 공화당 여론을 움직이는 대단한 매체였어요. 여기서 웬델 윌키를 띄우니까 1940년 대선에서 공화당으로부터 초빙돼 프랭크린 루스벨트 현직 대통령과 붙었어요. 루스벨트는 당시 3선 도전이었는데, 32년, 36년보다 표를 많이 깎아먹었지요. 만약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더라면 윌키가 당선됐을 겁니다. 나는 칼럼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보면서 윌키를 떠올렸어요. 이 아수라장 경선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생각하면 썩 잘 한 선택이라고 보지 않아요. 그런데 이미 했으니까 두고 봐야지요."

-윤석열 전 총장 지지율은 속락 중인데요.

"빠지게 돼 있던 거지요."

-윤석열 전 총장의 강점은 법치를 세우려다가 정권의 핍박을 받아서 뛰쳐나온 저항과 투사의 이미지거든요.

"솔직한 얘기로 조국 전 장관 수사하고 기소하면서 정권하고 충돌이 생겼잖아요. 거기에 이른바 현 정권에 비판적인 유권자들과 보수 기층이 반응한 거지요. 일단 속이 시원하잖아. 카타르시스가 있잖아요. 윤석열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은 생각은 하지 않고, 또 그 후에 법무장관하고 티격태격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었던 것 같아요."

-윤석열 전 총장에게는 극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임명 전까지만 해도 충실한 문재인 정권 적폐청산의 칼이 되어주었거든요.

"전 정권에서 있었던 일을 심판하는,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는 것, 좋다 이 말이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는 정치적 행정적 책임으로 끝내야 할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면서 모든 것을 검찰 위주로 사법적으로 다뤄서 무리하게 했어요. 그러나 그런 여론도 있으니까, 여론이 반영된 측면이 있지요. 재판도 마찬가집니다. 1심에서는 여론을 좀 살피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1심에서는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주도한 기소가 유죄로 나온 게 좀 있긴 있어요. 시간 지나서 엄밀하게 들여다보니까 고등법원에서는 대부분 무죄가 나왔잖아요. 조윤선 장관의 직권남용이 무죄 나왔고. 그럼에도 항소에 대법원까지 상고했는데, 나는 우리나라 검찰조직의 굉장히 나쁜 점 중 하나가 기소를 재량껏 하고 법원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검찰권을 남용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나는 검찰 특수부 같은 이런 정치성이 농후한 검찰조직에 있던 사람이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나, 나는 그 자체를 인정 못합니다. 내가 공개적으로 그걸 몇 번 썼어요. 나는 윤석열씨가 공정과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봐요. 검찰권이 남용됐잖아요. 현 정권도 할 말이 없는 게, 문재인 정권은 처음에는 윤석열 지검장이 잘 한다고 박수를 쳤어요. 이 정권도 윤석열을 비난할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판·검사 하던 사람이 별안간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거, 나는 그게 성공하기 어렵다고 봐요. 거기다가 뜬구름처럼 떠다니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파악이 돼서 여러 SNS, 유튜브에 그것도 익명이 아니라 자기 이름 걸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나요? 거기에 대해 반론 못하고 있고, 공중파 미디어에서도 받아서 쓰기 시작했어요. 나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윤석열에 대해 기대를 걸고 그러기에 속으로 좀 이상하다고 봤어요. '저게 뭐하는 건가.' "

-검사 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검찰 했던 사람들이 맨날 하는 게 사람 수사하고 기소하는 건데, 그게 체질화돼 있는데, 그런 사람이 청와대 가서 모든 국정을 장악하면 뭔 일이 발생할지 모르잖아요. 물론 검사 했던 사람들 중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윤 총장 같은 경우는 정치권력과 결부된 것을 많이 했고, 특수부니 뭐 이런 부서에 있던 기간이 길잖아요.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지지율이 높다고 해도 적절하지 않고 그대로 잘 가겠느냐 생각을 했지요."

-여당의 경선 구도는 이낙연 대표가 요 며칠 치고 올라왔지만 여전히 이재명 지사가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요새 여론 조사 결과를 당원들도 따라가는 것 같더라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경우도 그랬고.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 권력창출기관이 여론조사기관이라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여론조사 지지율이 비슷하게 나온다면, 진짜 몰라요. 그러나 10%포인트 격차가 나면, 당원들도 여론을 따라가지 않겠는가, 밴드웨건 효과가 분명히 있거든요. 2012년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지켜보니까 그런 게 있더라고요. 당원들이 의원들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아요, 한계가 있더라고요."

-국민의힘의 고민이, 정당지지율에서는 민주당과 어느 정도 대등해졌는데, 당내 주자들은 이재명 지사나 이낙연 전 대표 지지율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거든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외부에서 '대릴사위'를 들여와야 한다는 데에 이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닙니까.

"당내에서는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그 정도잖아요. 이건 하나의 가설인데, 그 중에 후보만 공식적으로 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중간층이 현 정권에 질려버렸고, 지난 서울시장 보선에서 강남 대치동인가 어디인가에서 국민의힘 득표율이 90%가 넘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아는 민주당 사람에게 그랬어요. '당신들 1년 동안 참 잘 했다, 10년 동안 벌어놓은 거 다 까먹었다'고요. 부산에서 민주당이 몇 석이 나오고 2016년 대구에서 김부겸 되고, 강남 송파에서도 당선됐는데 지난 10년의 공업을 1년 동안 다 날려 보냈다고 했더니 말을 못 하더라고요. 그런 정도가 되기 때문에 누구든간에 후보가 되면 민주당 주자와 호각구도가 될 겁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말을 좀 거칠게 하고 비호감도 많지만, 직전 선거에서 2등 했잖아, 큰 자산이지요."

-재수해야 대통령 된다는 말이 있어요.

"재수 하면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재수가 좀 되는 나라예요.(웃음) 그래서 나는 국민의힘 당내 주자들에 전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경선에서 후보만 되면 이번 선거는 누가 나와도 해볼 만하다고 봐요."

-최근 내신 회고록에 흥미로운 일화가 많이 있던데요. 최근 10년 여의도 정치의 중요한 장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억을 꼼꼼히 했어요. 그렇더라도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옛날 같으면 신문스크랩과 자료 찾는 수고가 클 텐데, 요즘은 인터넷에 기록이 다 있으니까 편해요. 팩트 체크가 쉬우니까.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내게 됐어요."

-30년 대학교수를 하시다 정치로 뛰어드셨는데요.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사업에 반대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악연이 있었지만 본격 정치에 들어온 것은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맡으면서예요.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할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들어갔어요.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지적하고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꼬집으니 경쟁자였던 박 전 대통령이 제 글과 활동반경을 유심히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도 적잖게 나오던데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기자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박근혜 탄핵의 분기점은 김병준 총리 내정한 것과 관련이 깊거든요.(웃음)"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했는데 청와대가 선수 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안철수 대표가 탄핵해야 한다고 발 벗고 나서게 된 계기였어요. 민주당은 구경하고 있다가 안철수가 세게 나오니까 우리도 따라가자 하며 그날로 탄핵으로 기운 거예요, 하루사이에. 저는 국민의힘 내부를 안에서 봐 왔잖아요. 이런 배경을 아는 기자들이 많지 않더라고. 그러니까 역사는 초안을 남겨야 돼."

-말씀 나온 김에 안철수 대표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지난 4·7 재보선에서 보수야당 단일화를 주도하는 등 전과 비교해 우클릭 하고 있는데요.

"그게 웃기는 거지요. 안철수 대표가 2012년에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것도 단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거긴 하지만, 여하튼간에 자기가 그걸 가지고 자기 노선을 써드웨이(제3의길)로 정한 거잖아요? 그러면 안보라는 것은 아무래도 여러 가지 대북문제, 외교에 관해선 과거 새누리당과 공유하고 그 대신에 새누리당의 문제인 노동 환경 여성 이런 사회적 이슈마다 흔히 하는 말로 꽉 막힌 그런 것에 대해선 개방돼 있다는 것이거든. 경제문제 같은 것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이 되잖아요. 그런데 책에도 썼지만, 느닷없이 일요일 날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어요.(웃음)"

박근혜 정부가 2016년 들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한령 발동하고 보복하기 시작했다. 그해 4·11 총선에 홍보물 제작업체의 리베이트 의혹 건과 관련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있던 안철수 대표는 7월 10일 일요일에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사드 배치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사드배치에 반대했다.

-당내 토론을 거치지 않았습니까.

"전혀. 아무도 상의한 사람이 없어요. 나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다가 2017년 대선 정국에서는 진보, 민주당 고정표는 빼고 이쪽(보수)으로 가야 하니까 또 바뀌었지요. 몇 번씩 말이 바뀌었어요.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라는 말을 도대체 생각을 하고서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엔 안 썼지만 탄핵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신적 비판을 굉장히 세게 했어요. 민주당이 자기들도 감히 못하는 걸 안철수 대표가 하니까 놀랐지요. 탄핵과 박근혜 비판의 스타트를 당 대표급으로서는 안철수가 끊은 거라고. 나는 '이게 뭐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평소 신중한 안 대표의 모습과 달랐던 것 같네요.

"브레인스토밍을 해야지. 최소한 몇 사람 의견도 듣고. 그게 전혀 없었어요."

-그나저나 국민의힘과의 통합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말이 없어요.

"그럴 만도 하지요. 더 이상….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호남 지역구에서 많은 표를 얻어 제3당이 됐으면 호남의원들의 기대와 여망, 그 다음에 자기의 고유한 정치적 철학을 융화해서 끌고 갔어요 되는 거잖아요. 2016년 총선이 너무 기가 막혔잖아요.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해서 석권을 했어요. 부산에서 민주당하고 새누리당이 경쟁이 됐고, 대구에서도 민주당이 몇 석을 얻었잖아요. 어느 당도 과반이 안 되니까 일당 독재가 안 되는 거였잖아요. 그런 기가 막힌 황금분할을 깨버렸다고. 대선(2017년 5·9 대통령 보선) 때 완전히 깨먹었지요. 그게 저는 제일 허망하다고 생각해요."

-제3지대, 제3당 실험을 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보시나요.

"국민의당을 파열음 없이 잘 끌고 갔으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 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의힘과 합당을 한다는데, 거기에 지금 국민들의 관심이 있나요? 하면 하나보다 하고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교수님이 보수도 공부 좀 하라며 2014년 '공부하는 보수'를 내셨는데, 이후에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늦었어요. 사람이 그렇게 변하지 않을 거예요. 안 대표는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류하고 이러는 게 안 되더라고."

-외조부님께서 우리나라 서양화가 1호이자 민족미술 운동을 하셨던 춘곡 고희동 선생이신데, 어려서부터 교양의 세례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또 '4대문안 서울토박이'라는 데는 분명 문화적 정체성이 있거든요.

"외가가 스토리가 있지요. 아시겠지만 한 사람(춘곡 선생의 백부)은 나라 팔아먹고 그 아들도 일제 때 잘 먹고 잘 살았지요. 가장 성공한 친일파였다 할 수 있지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왔어요. 역사문제에 대해 일찌감치 눈이 뜬 셈이지요. 할아버지 큰집은 어마어마한 매국노였지만 할아버지의 부친은 거리를 두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할아버지 부친과 할아버지는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고영철-고희동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 교수 외조부 고희동 선생의 부친은 중국어와 영어 역관으로서 대한제국 때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이었던 고영철이다. 구한말 봉화, 고원 등의 군수를 지내다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했다. 고영철의 형 고영희는 대한제국 탁지부 대신 등 요직을 지냈고 대표적 친일매국노로 오명을 남겼다. 정미칠적과 경술국적의 명단에 올라있다. 이 교수는 고영철-고희동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고희동은 총독부가 주관하는 미술대전인 선전(鮮展)에 대항해 서화협회전을 개최하는 등 일제강점기 민족 미술을 지켰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고 반공주의자로서 해방 후에는 우익 문화계의 리더로 활동했고 참의원을 지냈다.



-혹시 조부께서 교수님께 남기신 작품이 있나요.

"할아버지가 그린 유화가 3점이 남아있는데, 둘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어요. 하나는 동경미술대학교(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이에요. 일제 때 동경미술대학 유학생들을 보면 제일 먼저 간 분이 우리 할아버지고 이후 몇 분이 있어요. 당시 졸업생들한테 자화상을 그리라고 했대요. 보통 한국사람 자화상은 담뱃대 물고 있거나 양복 입고 폼을 잡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할아버지만은 조선 선비의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그림에 당신의 자존심을 심은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합니다. 실제 삶에서도 정갈하게 사신 분으로 저도 기억하고 세상 평도 그렇습니다."

-교수님도 판사나 검사를 안 하시고 교수의 길을 선택하신 것도 집안 가풍의 영향인가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잡지에 글을 쓰는 것이 참 부럽더라고요.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 언론계의 기라성 같은 분들이 계셨지요, 동아일보 천관우, 송건호 같은 분들. 또 서울법대 선배로 언론인으로 유명한 분이 송건호 편집국장이었고, 서울신문 남재희 편집국장 등도 계셨잖아요. 남재희 선배는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하다 서울신문(당신 정부 소유 신문) 편집국장으로 가서, 당시 법대 후배들이 배신자라고 했어요.(웃음) 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 사태 대 송건호 선생은 물러났잖아요. 송건호 장관은 제가 만난 적은 없었어요. 남재희 장관은 이번에 책을 드리니까 감개무량하시더라고요." <기사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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