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고위층 부모찬스·공무원 땅투기… 이러니 공동체 신뢰 안 생겨"

급격한 경제 성장과 이를 못 쫓아가는 사회문화 간의 괴리가 문제
우리나라 법제도 선진국 수준… 규범규칙 모두가 지킬때 신뢰 형성
정당한 절차 거쳐 법 만들어야하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집행돼야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고견을 듣는다] "고위층 부모찬스·공무원 땅투기… 이러니 공동체 신뢰 안 생겨"
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前노동부 차관) 고견 인터뷰.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前노동부 차관)


"사회가 위기를 맞는 것은 법치가 흔들려서입니다. 법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두 가지가 반드시 선행돼야 합니다. 첫째 법이 정당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올곧이 적용돼 누구에게나 똑 같은 의미의 법이 제정돼야 해요. 둘째 법 집행이 공정해야 합니다. 특히 이 부분이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법제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선진화됐어요. 그러나 법의 집행에 있어서는 아직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로남불 이런 것들이 다 법제도의 불공정한 집행에서 생기는 겁니다."

최근 법치와 신뢰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직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이라는 죄목으로 기소했지만 그 사법농단이라고 지목한 일제 강제징용자 판결에서의 외교적 고려가 얼마 전 또 다른 1심 판결에서 합법한 것으로 판결이 났다. 정작 사법을 농단한 주체는 사법농단이 아닌 것을 사법농단이라고 뒤집어씌어 사법부를 정권 말을 잘 듣도록 순치시킨 문재인 정부다. 이 뿐이 아니다. 조국사태나 권력형 비리 수사를 놓고 벌어졌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간 갈등 등 법치 훼손 문제는 여전히 국민들 뇌리에 깊게 각인돼있다.

이런 때에 30여년 고용노동 분야에서 법제도 제정과 노사공존의 행정을 펼쳐온 정병석 전 노동부 차관이자 현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를 만나 법치와 사회적 신뢰에 대해 고견을 들었다. 정 교수는 공직을 떠나 교육자로서도 경제사와 성장론을 가르치며 선진사회로의 진입의 전제조건으로서 공정한 법 집행과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정 교수는 신뢰와 법치가 확립된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특히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지식인과 사회지도층이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공정과 비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그래야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대중들을 각성시키고 권력이 긴장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본사 회의실에서 가졌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정 교수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자기 주장의 근거를 공직생활 경험에서 찾아내 들려줬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신뢰와 법치에 대한 고민은 늘 있어왔지만, 왜 유독 이 시점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되는 건가요.

"저는 경제학자로서 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한강의 기적, 경제성장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들어왔잖아요.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을 했어요. 경제가 성장하면 거기에 맞춰서 다른 사회시스템도 같이 업그레이드 돼야 하는데, 이것은 성장 안 했단 말이에요. 사회문화라는 것은 도약이 없어요. 경제는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는데, 사회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발전합니다. 거기서 괴리가 생긴 거지요."

-현재 그 둘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말씀인가요.

"국가시스템을 제도학파 관점에서 보면 법제도라는 공식적인 제도, 그리고 법제도로 표현되지 않으면서도 국가운영에 대단히 중요한 시스템, 이게 사회문화라고 봅니다. 우선, 법제도는 입법·사법·행정 등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제도 등을 말하는 것으로 공식적 법으로 표현된 제도입니다. 국가운영의 중요한 축이지요. 두 번째로는 사회문화의 의식이나 가치관이라든지 종교, 규범, 준법질서 같은 거거든요. 그럼 이런 것들을 뭐라고 표현할 것이냐 하면 제도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s Cecil North)에 의하면 인포멀 인스티튜션(informal institution), 비공식 제도, 즉 통상적으로 문화라고 한 겁니다. 한 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공식적인 법제도가 선진국 틀을 갖춰야 하고 문화도 선진국 틀을 갖춰야 하는데, 문화 측면이 발전하지 못하면 어느 단계에 이르러 경제성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 단계에 와있는 겁니까.

"사회가 계속 고도성장을 할 때는 작은 갈등과 문제를 덮고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고도성장이 안 되고, 분배문제가 생기고, 여러 가지 사람들 간 갈등이 커지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그러면 해결을 못한단 말이에요. 이럴 때 갈등 조절 메카니즘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지요. 성장도 정체돼 있고 대단히 문제가 있어요. 법제도를 잘못 만든 측면도 있지만 제도 운용을 잘못해서 성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왜 사회문화가 경제성장이라든가 분배문제를 촉진하느냐 하면, 예컨대 반재벌을 넘어서 반기업 정서라든지, 기술자들을 별로 좋지 않게 본다든지, 일 잘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 안 한다든지,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든지, 있는 법제도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법제도를 잘 만들어놓아도 이행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강연과 책에서 줄기차게 하고 있어요."

-사회문화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겁니까.

"사회와 국가 운영의 두 개의 시스템, 즉 법제도와 문화를 얘기했는데 모두가 관심이 법제도에만 가 있어요. 1년에 입법이 만 건이 넘고 국민들도 무슨 일만 생기면 법 만들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법을 잘 지키느냐? 신뢰의 문제에서는 신경도 안 쓰고 배려를 않고 법제도가 작동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생기고 있는 문제가 법을 제대로 안 지켜서 생기는 거고 신뢰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근본을 따져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별의별 얘기 다하지만, 왜 공정의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다 이 두 가지 문제에서 기원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삼권분립 등을 채용해 그 기반 위에서 법제도를 만들어온 것은 잘된 선택입니까.

"저는 공직생활을 30여년을 하면서 법제도 만드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최저임금법, 고용보험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 여러 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법을 만들어놓으면 미비점도 있고 고칠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입니다.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법제도를 벤치마킹하려고 합니다. 저도 베트남 페루 몽골 세네갈 미얀마까지 가서 전수를 하는데, 굉장히 열심히 한국 제도를 배우려고 합니다. 베트남 같은 경우는 법, 시행령, 시행규칙까지 매년 가서 어드바이스를 해줬어요. 그 사람들이 제일 본받고 싶은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왜냐하면 다른 선진국 제도들은 너무나 높이 있어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나라 제도는 자기들과 같은 상태에 있다가 불과 20~30년 만에 성장했거든요. 저 같은 경우 직업훈련이나 고용보험제도에 대해 개도국 공무원들이나 학자, 노사 관계자들한테 교육 강연을 참 많이 했어요. 한국이 1960년대에는 상황이 이랬고 그래서 이런 정책을 했고, 70년대에는 여건이 이러저러 해서 이런 제도를 했고, 80년대와 90년대는 이렇게 했다고 하면 아주 관심 있게 봅니다. 그들 입장에서 한국은 자기들 상황에서 본받아야 할 모델이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법제도를 참 잘 만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의 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와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완벽한 법제도가 어디 있습니까. 법제도를 어렵게 만들었으면 먼저 그것을 지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먼저 위정자부터 시작해서 법을 지켜야지요. 우리는 이걸 제대로 안 한단 말이에요. 높은 사람들은 법을 안 지켜요. 그 다음, 법을 지키도록 하려면 서로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나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고 담당자도 믿고 정부도 믿고 그래야지요. 제가 책에서 반복적으로 한 얘기는 법제도를 잘 만들어놨는데,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법을 지키는 의식과 문화가 없다는 겁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공정과 신뢰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신뢰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관찰했는데요, 가장 중요한 개념이 후쿠야마가 말한 것처럼, 공동체의 규범·규칙을 나도 지키고 너도 지키는, 모두 지킬 때 신뢰가 쌓인다는 겁니다. 여기서 규범규칙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규범규칙을 강조 안 하는데,저는 규칙규범을 안 지키는데서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지도층 자녀의 가짜 인턴증명서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불법 투기의혹, 이용구 전 법무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등이 교수님 말씀에 딱 들어맞는 사례인 거 같습니다.

"가짜 인턴증명서가 왜 문제가 되느냐면, 친구가 부탁했으니 안 한 것을 한 것으로 하고 기간도 늘려주고 이러면 교수로서 부여된 규범규칙을 어긴 거지요. LH 직원 투기의혹도 직무상 안 정보를 갖고 투기를 한 건데 명백히 규범규칙을 어긴 거란 말입니다. 공직에서는 부여된 마땅한 직분이 있고 그것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게 다 신뢰를 허무는 행위 아닙니까. 신뢰위반이지요."

-그렇다면 규범규칙에 먼저 흠결이 없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준수할 것을 동의해야 하는 거고요.

"법제도에 대해서 가장 와 닿는 표현이 게임의 규칙입니다. 더글러스 노스가 '룰 오브 게임'이라고 한 것인데, 법제도를 게임의 규칙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이해가 쉬워요. 선진국의 법제도라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싸우고 타협한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 결과인 거지요. 그 다음부터는 엄정하게 그것을 지키자, 안 지키는 사람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자는 것이 법제도와 규범규칙이 갖는 의미란 말이에요."

-문제는 법제도의 수립에서는 절차적으로는 정당성을 띠고 또 동의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대목에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법치에도 두 가지 요건이 있어요. 법치가 제대로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첫째 법이 정당해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한테 권한이나 권력을 모아준다거나 하면 안 되겠지요. 민주적인 기본질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 권력의 분립 등 정당한 내용을 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만들어진 법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왜 법치가 불완전하냐 하면,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아서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잖아요, 요즘은 내로남불도 있고. 학생들한테 '우리나라가 법치국가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반 정도만 손을 들어요. 반은 아니라는 거예요. 대개 법의식 조사를 하면 국민 60%는 법치국가인 것 같고 40%는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이 나와요."

-그 헌법이 마구잡이 입법에 의해 침해받고 또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요건은 괜찮았어요. 법의 정당성은 담보가 됐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많이 흔들리고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법준수의 문제에서는 아직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법치가 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법의 집행, 즉 사법도 위험한 상황인 거 같아요.

"법을 안 지키는 문화가 어디서 연원이 됐을까 많이 생각해봤어요. 제가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에서도 썼지만 조선은 기본적으로 도덕정치, 법보다는 도덕을 훨씬 위에 뒀어요. 그리고 상공업을 굉장히 핍박하고 경시했어요. 그 다음에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조선 내내 유지했어요. 법을 중시하지 않다 보니까 이런 사례까지 있어요. 조선 초기 성종 때인데, 가뭄이 들어서 금주령을 내렸어요. 재상 한 사람이 법을 어겼어요. 그럼 처벌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한 젊은 관료가 재상이 법을 안 지키면 되냐고 이의제기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엄청 성토를 당해요. '유학자가 무슨 법을 따지냐?'며 오히려 징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요. 논란이 이니까 성종이 '벌을 줄 거까지는 아니다'하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또 조선 말에 고종 때도 몇 번의 금주령을 내려요. 그런데 시행을 못해요. 왜? 안 지키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 왕족부터 안 지키는 겁니다. 법을 중시하지 않은 문화가 만연한 겁니다."

-상공업과 법치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요.

"상공법이 발달하지 못하면 계약, 신용, 약속 이런 부분들을 체득할 기회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일본인들을 보면 공동체 규칙을 지키고 제재하는 문화가 상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유대인이나 일본 오사카 상인들은 자기들이 적용할 규칙을 자기들이 만들었어요. 이러이러한 규약을 지키기로 하자며, 어기는 사람은 위반 횟수에 따라 그에 맞는 처벌을 엄정히 시행했어요. 공동체에서 만든 규칙은 지켜야 한다. 안 지키면 그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기 어렵다는 문화가 형성된 겁니다. 우리는 어디서 이런 문화를 경험해봤겠느냐는 겁니다. 근세 이전에 가장 약속문화가 앞서간 것이 상공업 분야예요. 길드 조직도 마찬가집니다."

-중앙집권체제가 법제도 준수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중앙집권제는 중앙에서 다 한다 말입니다. 지방분권제라는 것은 한마디로 신뢰입니다. 교통도 통신도 불편한데 지방을 믿지 않으면 통치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만큼만 바치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일이 생기느냐면, 일본 같은 경우는 다이묘(영주)들에게 권한을 다 주거든요. 그 땅 안에서는 일부 쇼군에 떼어주는 것 말고는 전부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서 지금 10만석인데 내년에는 15만석으로 만들어 부를 축적하자는 동기가 생기는 겁니다. 경쟁이 생기고요. 반면,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지방관들이 1년이나 2년 있으면 간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늘 지방이 들뜬 상태에 있었던 건가요.

"제가 책에다 닥나무 종이에 대해 썼는데요, 한 지역에서 특산품이 나오면 중앙의 호조에서 공물로 기록하고 내년부터 얼마씩 바치라는 명을 내려요. 이리 되면 선의로 시작했던 특산품이 어마어마한 부담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하는 겁니다. 닥나무는 매우 귀해요. 그런데 전남 영광 섬 같은 데는 많이 있거든요. 조정에서 권장하는데도 안 해요. 인센티브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도 조선의 왕들이 다 알고 있었어요. 태종, 성종 실록에 나와요. '저것을 심는 것이 그 사람한테 상이 아니고 부담이 되니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 임금이 그래요. 닥종이든 밀감이든 누가 재배를 해서 진상을 하면 내년에 더 많이 바치라고 하니 누가 하고 싶겠어요. 그래서 규범규칙을 지키고 그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경험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정약용의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에 나옵니다. 한마디로 착취구조였던 거지요."

-책(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에서 스페인 동화가 예로 제시되잖아요, 저는 그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한 어른 소경과 소년이 포도를 한 알씩 먹기로 했는데, 소경이 두 알씩 먹는 것을 보고 소년은 말을 않고 자기도 두알 또는 세알을 먹잖아요. 일찍 포도가 소진되는 것을 보고 소경이 소년에게 화를 내면서 "내가 두알 씩 먹는데도 네가 아무 말을 않는 것을 보고 네가 반칙을 쓰는 것을 알았다"고 하잖아요. 결국 부정의나 비리를 보면 드러내고 고발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공범이 된다는 교훈을 말해주는 것 같은데요.

"제가 책에서 용기 있게 행동하라는 말을 썼고 비겁하다는 말도 했는데요, 지식인들이 과연 비겁한가? 꼭 그렇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행동하는데 어렵게끔 여건을 만들어놓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뭔가를 지적한다면, 지적당한 사람이나 조직, 단체가 있잖아요. 교수가 소신껏 '이건 A가 아니고 B다'라고 하면 학교나 집에 찾아와 엄청나게 항의하고 고성능 스피커 틀어놓고 떠든단 말이에요. 또 인터넷에다 '신상털기'를 하고요. 그러니 제대로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대학 총장이나 학장이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집에서는 아이들이나 '우리 아버지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 저렇게까지 할까'하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소신껏 용감하게 발언하기가 어렵더라는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노조라든가 시민단체 가운데 힘을 가진 단체가 많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정말 국민의 신체의 자유, 재산권을 철저히 지켜주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판사도 판결을 잘못했다며 '저 ×× 자식들 어디 한번 잘 되나 보자' 이렇게 욕을 먹는데 어떡합니까. 우리 사회가 너무 무례, 무법한 겁니다."

-공권력이 갈등을 중재, 화해시키는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요.

"법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겁니다. 국가나 경찰이 법을 확실히 시행(enforce)해야 하는데 못하는 거예요. 가령 노조가 서로 싸우다가 작업을 못 하게 했다, 공장을 막았다고 하면 아니 나하고 관계도 없는 문제 때문에 왜 기업주나 주민들이 재산상의 피해와 신체상의 위협을 받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가 즉각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알아서들 하세요' 이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합니까. 이런 여건이다 보니 소신껏 발언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발언을 해야 할 지식인이 사회 여건 탓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누차 강조하는 것은 법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있는 법 가지고도 된다는 겁니다. 있는 법도 안 지키면서 자꾸 법만 만든다고 지키겠습니까. 가령 2005년 12월 크리스마스시즌에 뉴욕 대중교통공사가 법을 어기고 파업했을 때 법원이 하루 파업에 벌금으로 이틀 치의 임금을 물리니까 노조가 3일 만에 파업을 철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법치라는 말입니다. 법치가 바로 설 때 지식인의 역할이 확대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법치가 바로 서기 위해 지식인들이 발언을 용기 있게 해야 하는 거고요. 여건 탓만 해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리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는 온정주의로 왔다고 치고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국이고 올림픽도 두 번씩이나 성공적으로 치렀고 월드컵도 다 해본 나라로 개도국들이 다 쳐다보는 나라인데, 우리가 언제까지 후진적 관습에 젖어 있어야 되겠습니까. 선진적 품격 있는 모럴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법제도 만드는 것 이전에 먼저 이행을 하자는 겁니다. 사회 각 개인이 법제도를 준수하고 파출소장, 경찰서장, 판사, 검사, 선생님들이 소신 대로 직분을 다하면 법치는 이행되는 겁니다. 법치로 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좀 내려놓는 아량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노동부 핵심 보직을 거의 다 거치셔서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강의 힘을 가진 이익단체 민주노총인데 자기들 이익은 조금도 내려놓지 않으려 하거든요. 다음 달 시행되는 개정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해고자·실업자가 산업별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이 삭제됐습니다. 반면 기업경영인들의 대항권인 파업 시 대체근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법제도라는 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이해당사자간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제도가 만들어지면 당사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워요. 100% 만족할 만한 것을 얻기가 힘든 것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에 유리하게 법을 만든다면 정당한 절차 거쳐서 만든 법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또 힘센 이해집단이나 개인이 법을 어긴 것은 왜 모른 채 하느냐는 겁니다. 불법행위를 확실하게 못 하게만 해도 굉장히 효과가 큽니다."

-정권이 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건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문제입니다. 왜 거기에(노조에) 유리한 법제도만 만드느냐 또 왜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만 펴려고 하느냐 하면, 예를 들어 힘이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든지 소상공인의 권익은 왜 대변하는데 소홀하냐 하면, 다 정치적 계산 때문인 겁니다. 포퓰리즘이지요."

-국회의원으로 노동계 출신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생긴 영향도 있을 텐데요.

"과거에 어떤 진보적 생각을 가졌든, 어떤 노동운동 경력을 지녔든 그것을 떠나서 시대가 달라지고 상황이 바뀌면 그 시대에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중점에 둬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입법을 해야 하는데, 패거리 정치도 아니고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국회가 입법을 바르게 하지 못해도 대의정치는 위험한 거 아닙니까.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가장 중심적이고 뭔가 잘못된 것을 지적하며 균형 잡힌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은 지식인들이고 좀 더 넓혀 말하면 사회지도층이거든요. 요새 전문직이 많이 생겼는데, 그 사람들을 포함해서요. 이 사람들이 이건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을 해줘야 합니다. 견제하고 비판하고 좋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하기에 어려운 여건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그럼에도 하자는 것입니다. 사회가 이런 사람들한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고 그래야 정치가 변하고 발전할 거란 말입니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