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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여야 저팔계式 정치…`아사리판` 자초 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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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정권 '저팔계식 외교', 원칙 잃은 척 실리만 관철
닮아가는 정치권…여권서 親文주류와 차별화 일사불란
보수야당, 노선·원칙만 이탈…당원 의사결정 부정 빈발
늑장 계파논쟁과도 연결…공멸 전 '팔계' 모두 버리지 말길
[한기호의 정치박박]여야 저팔계式 정치…`아사리판` 자초 국힘
지난 5월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비전 발표회에서 당대표 예비후보들이 각자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주호영, 홍문표, 윤영석, 조경태, 김웅, 이준석, 김은혜, 나경원 예비후보. 연합뉴스

'저팔계식 외교'라는 말이 있다. 북한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인 1990년대 초반 소련 붕괴 직후, 외교관들에게 전통적 적대관계였던 미국·일본과도 적극적 외교에 나서 이익을 관철하라며 하달한 방침을 가리킨다. 일례로 김정일은 1994년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가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 미련한 척하면서 어딜 가나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은 것처럼 해야 한다"며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외교방식"이라고 지시한 데서 기인한다. 북한은 결국 능수능란한 외교술로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를 기만하는 데 성공했고, 그후 20년이 넘도록 핵과 정권을 모두 보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저팔계식'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기존 노선, 원칙조차 깨고 뛰어든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정치권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비주류로 분류되는 송영길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부동산 조세 정책 전환 가능성을 연일 화두에 올리고, 송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부산 청년과의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을 (정권) 초기에 너무 급격히 인상한 것이 잘못"이라며 직접 소주성(소득주도성장) 비판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조국·김상조 등 청와대 핵심부에 올랐던 인사들에게 '내로남불'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력 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4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 "기업에 대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압박하고 피해나 부정행위를 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자유로운 기업·경제활동'을 강조했다. 4년 전 처음 대선에 도전하면서 "재벌 해체에 제 목숨을 걸겠다"던 모습에서 돌변한 것이다. 물론 27일 문재인 정부가 '소주성 설계자'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대표적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 새 원장으로 앉혔다는 점에서 '말과 행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만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민심에 놀라,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모습을 진영 차원에서 보이는 셈이다.

반면 야권은 어딘가 어설프다. '세대교체' '변화' '혁신' 등 구호를 앞다퉈 내세우며 노선과 원칙을 깨기만 할 뿐, 실리는커녕 공멸(共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특히 당내 경쟁마다 '게임 규칙 흔들기'로 유불리를 도모하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여권의 극단주의 방관, 누적된 실책으로 반사이익이 예상됐던 4·7 재보선을 앞두고부터 나타난 이례적 현상이다.

국민의힘에선 하태경 의원이 '당원투표 배제론'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23일 SNS에서 서울시장 경선에 관해 당외 주자들에 대한 기회 보장을 내세우며 "당원투표를 빼고 100% 시민경선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본경선으로 예정됐던 책임당원 투표(20%) 마저 배제하자는 것이었다. 당외 주자들의 입당이 불발되고, 여론조사가 야권단일화·본선 경쟁력을 담보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면서 책임당원 투표가 본경선에서 배제되고 예비경선으로 옮겨갔다. 경선 주자 간 당원투표 반영·미반영의 유불리가 확연히 갈리면서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당 후보로 낙점됐고, 2위로 낙마한 나경원 전 의원은 승복했다. 100% 여론조사의 덕을 봤던 오 시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야권단일화에선 기성 보수정당에 유리한 유선전화 도입을 내세우는 등 협상 지연 끝에 단일후보직을 거머쥐었고, 본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게 기록적인 득표율 격차로 압승했다.


이때까지는 여야가 맞붙는 '선출직 후보'를 뽑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잡음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차기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도 당원의 의사결정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오 시장은 선거 승리 닷새째인 지난달 12일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해 이례적으로 전당대회 개최에 반대했고, 이틀 뒤에는 하 의원이 민주당의 극성 친문(親문재인) 권리당원 중심 정치를 재보선 패배 사유로 들며 100% 시민여론조사를 당대표 경선에도 요구했다.
이후 국민의힘 전대 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당대표 선거 사상 첫 컷오프(예비경선)를 도입하면서 시민여론조사를 50%(기존 30%)까지 반영키로 했다. 대신 예비·본 경선 시민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를 위해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했다. 이준석·나경원 등 유력후보군은 이런 룰을 확인한 뒤 20일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일주일간 시중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돌풍'이 감지되자 하 의원과 초선 의원들 10여명이 26일 ▲시민여론 역선택 방지 조항 철회 ▲현존 당원분포를 따른 당원선거인단 청년층·호남지역 가중치 확대 등 '본경선 룰 수정'을 위한 긴급의원총회를 요구, 원내지도부와 충돌했다.

비슷한 시기 당권주자들 사이에선 나경원·주호영 예비후보가 내년 대선과 연관지은 '유승민계 대표' 의혹을 제기하고, 이준석·김웅 예비후보 등은 이들을 '심판 대상'이라고 맞받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진 터다. 이들 중 후자와 같은 새로운보수당 출신의 한 의원은 "이준석계"를 자처했다. 계파논쟁 재등장과 가치 경쟁 실종에 중진 주자들을 '구태 장본인'으로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일견 당연하지만, 갈등의 뿌리가 드러난 것보다 깊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같은 갈등상은 원칙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마치 여러 명의 저팔계가 저마다 욕심에 눈이 멀어 피아구분도 없이 다투는 모습이다. 저팔계에서 '팔계(八戒)'는 불문에 입문하고도 8가지 계율을 깨고 살생, 도둑질, 음탕, 망언, 음주, 치장과 가무, 화려한 침대, 탐식을 일삼던 그에게 갱생하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야당에서도 누가 더 많은 계율을 깨는지 겨루는 듯한 비방전보다는 건전한 경쟁과 '패거리 정치 종식'이 이뤄지길 바란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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