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정계입문 33년 `원조 친노`… 대선 다크호스 급부상

이광재 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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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광재 국회의원


이광재 의원은 27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제 인생일대의 도전과 마주했다. 정치입문 33년 만에 최종 두 개의 관문을 앞에 두고 있다. 경선 통과와 내년 3월 21대 대선 당선이란 관문이다. 평창의 꿈이 대한민국의 꿈으로 클지 시선이 모인다. 이 의원은 10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오면서 '노무현의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며 노무현 정치의 적자임을 내세웠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업그레이드 버전이 그의 지향점이다.

이 의원은 '이기욕립이립인'(以己欲立而立人, 내가 서고자 한다면 남을 먼저 세우라)이란 묵필을 즐겨 쓴다고 한다. 1988년 당시 노무현 의원 보좌관 면접 때 노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고 한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달라." 이 의원 역시 그런 도구가 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고등학교를 원주에서 공부했다. 지금도 원주는 제2고향으로 현 지역구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강원도 전체다. 17대 초선 의원일 때 지역구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넓은 지역구인 태백·영월·평창·정선이었다. 강원도 지사를 지낸 이유도 있겠지만, 노무현 정부 이래 줄곧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정받았다.

이 의원은 노무현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모든 정치역정이 노무현과의 관계에서 형성됐다. '좌희정 우광재'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정부 초기 인재영입, 정책 방향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어 17대·18 국회의원과 2010년 도지사를 지냈다. 그러나 도백 경험은 짧았다. 의원 시절 정치자금 관련 '박연차 게이트'로 7개월 만에 지사직을 잃었다.

유죄 판결로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유형의 세월' 동안 이 의원은 공부를 많이 할 기회가 주어져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한다. 중국 칭화대에서 2년 동안 있으면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강사들을 인터뷰하며 중국 국가정책 수렴 과정을 목도했다. 이후 귀국해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의 부원장과 원장을 역임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사회 지도층이 두루 참여한 여시재의 운영을 맡아 국내 대표적 싱크탱크로 발돋움시켰다. 정치 영어의 몸에서 벗어난 때가 9년여 만인 2019년 12월 특사 때였다.

이 의원은 작년 4·15 총선에서 당선돼 이제 3선 중진대열에 든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K뉴딜총괄본부장을 맡이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친문(親문재인) 진영의 대선 주자 부재가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친문의 토대가 된 친노의 이 의원이 본격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올해 들어서다. 본인도 국회에 복귀한 후 전국 강연을 다니고 발언을 조금씩 늘리면서 국민의 관심권으로 들어서고 있다.

4·7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새로운 리더십 필요성이 대두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인류의 미래가 되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이 의원은 변화의 한가운데서 기회를 포착하려고 한다. 대선 도전 선언을 공식 선언하면서 그는 이제 다크호스가 아니라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1965년 강원도 평창 △원주고,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88년 노무현 국회의원 보좌관 △2003년 2월~2004년 1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2004년 5월~2008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태백·영월·평창·정선) △2008년 5월~2010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同) △2010년 7월~2011년 1월 강원도 지사 △2016년 8월~2017년 8월 재단법인 여시재 운영담당부원장 △2017년 8월~2019년 12월 同 원장 △2020년 5월~ 제21대 국회의원(원주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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