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난치癌 마지막 희망, 암세포만 죽이는 `NK세포` 연구 30년

美유학시절 혈액 못 구해 자신·아내 피까지 뽑아 연구
서울아산병원·정부지원 덕분에 10년 가까이 임상 매진
재발률 절반↓ 생존율 3배↑ NH세포 효능·안전성 확인
AI로 난치암 정복… 암 발생 낮추는 '암 백신' 개발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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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난치癌 마지막 희망, 암세포만 죽이는 `NK세포` 연구 30년
이준기의 D사이언스

최인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


30년 넘게 한 우물만 팠다. 그 우물은 '면역' 분야다. 연구 트렌드에 맞지 않아 과제에 여러 차례 떨어져 연구가 중단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고집 피우지 말고 다른 연구를 해 보라는 진심 어린 쓴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럴수록 면역연구에 더 집중했고, 밤낮은 물론 주말, 휴일도 없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지켜온 고집과 집념의 연구 열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암 환자의 삶에 희망과 용기, 축복이 돼 줄 'NK세포치료제' 개발이 알토란 같은 열매로 영글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인표(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의 연구 인생 여정은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최 박사는 NK세포 분화·증식을 위한 기초·원천기술 개발부터 전임상, 임상연구 등을 거쳐 NK세포치료제 상용화를 위한 기술이전까지 지난 30년 동안 해 온 연구의 전 주기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 모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업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연구자 삶을 살아 오면서 다른 연구에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연구에만 집중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그는 "지난 30년 가까이 NK세포라는 한 분야 연구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행운이었고,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생명연과 동료 선·후배 연구자들의 고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서 "오랜 기간의 기초연구가 뒷받침됐기에 NK세포 기반 항암면역세포치료제가 빠르면 2∼3년 내 빛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박사의 연구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NK세포치료제를 백혈병 뿐만 아니라 생존율이 10%에 그치고 있는 췌장암 등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함께 데이터, AI(인공지능)을 이용해 NK세포치료 효과를 높이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나아가 코로나19 백신처럼 치료 이전에 암 발생을 낮추는 '암 백신' 개발 계획도 제시했다.

그는 "지난 30년의 연구 인생을 돌이켜 보면 연구라는 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기반이 쌓이고, 또 쌓여야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면서 "한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더 많이 지원해야 기초연구가 튼튼해지고, 창의적 연구를 통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내 피 뽑아 연구하다"…美 유학시절 남다른 연구집념=최 박사는 "자연스럽게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며 주변 선배들을 보면서 과학자의 길을 밟게 됐다. 미국 유학도 그런 선배들의 도움으로 갈 수 있었다. 그가 NK세포 연구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진학한 곳이 '감염병 실험실'이었고, 그 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말라리아 연구를 진행했다. 의대로 진학한 박사후연구원 때는 주로 병원에서 사람의 혈액에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이를 배양해 면역 반응을 밝히는 연구를 이어갔다. 때론 혈액을 구하지 못해 자신의 피는 물론 아내의 피까지 채혈해 쓸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외국 유학을 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신혼시절임에도 매일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갈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국 대학취업 포기하고 한국행…생명연서 'NK세포'와 인연= 7년 간 미국 유학시절을 마치고, 그는 1991년 한국행을 선택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낸 미국 대학에서 강사자리를 제안받아 준비하던 중,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같이 일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최 박사는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2∼3년쯤 하면 같은 실험실에 계속 있을지, 아니면 다른 실험실로 옮길 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 무렵 미국 대학과 생명연에서 취업 제의를 동시에 받았다"며 "한국에 가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에 미련없이 미국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귀국 배경을 밝혔다.

생명연 면역학실에 배치받은 그는 면역세포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에 대한 연구를 일본 연구팀과 함께 시작했다. 그는 "사이토카인의 타깃 세포를 NK세포로 연구했는데, 조혈줄기세포에서 NK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NK세포 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면서 NK세포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NK세포는 면역체계의 최전방을 방어하는 면역세포의 일종으로, 백혈구의 림프구 속에 존재한다. 자체 감지 기능을 통해 각종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특성을 지녀 이른바 '자살특공대'로 불린다. 각종 난치성 질병과 다른 면역세포의 기능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부터 NK세포 연구가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 NK세포를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 치료에 활용하려면 우선 NK세포를 분화·증식시켜 활성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 박사는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조혈줄기세포에서 최적의 NK세포를 분화·증식시키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NK세포가 조혈줄기세포로부터 분화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3만종의 유전자 라이브러리를 발굴하고, 이들 유전자의 기능도 규명했다. 특히 'TXNIP 유전자'가 NK세포 분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혀내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생쥐모델로 TXNIP 유전자 연구를 하던 중 일본 교토대에서 우리와 유사한 연구를 사람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연구자를 만나 TXNIP 유전자가 NK세포 분화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일본보다 먼저 관련된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보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다음 단계의 연구는 분화된 NK세포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NK세포가 암세포 사멸에 효능을 가지려면 활성화가 중요한데, 최 박사는 microRNA가 NK세포 활성인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NK세포 분화·증식·활성화 등에 대한 연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난치癌 마지막 희망, 암세포만 죽이는 `NK세포` 연구 30년
◇서울아산병원과 의기투합…'NK세포 임상연구' 추진=조혈줄기세포에서 NK세포를 분화·증식시키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최 박사는 뜻하지 않게 임상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우군들과 만남을 갖게 됐다. 첫 번째, 우군은 서울아산병원으로, 최 박사의 NK세포 연구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NK세포 임상연구 협력 제안을 받았다. 두 번째 우군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융합연구단에 선정되면서 장기간에 걸쳐 연구비 걱정 없이 NK세포치료제 상용화를 위한 협력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임상연구와 융합연구단은 우리 연구에 날개를 날아주는 격과 같은 것이었다"며 "서울아산병원과 정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백혈병 환자 180명을 비롯해 폐암 환자, 간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10년 가까이 오랜 임상연구를 통해 NK세포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생명연이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세포수를 가지면서 항암능력이 뛰어난 NK세포를 생산하면, 아산병원 연구팀은 난치성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임상 결과, NK세포를 투여한 환자 그룹은 비투여 환자그룹보다 재발률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환자 생존율은 10%에서 30% 이상으로 3배 가량 현저히 늘어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최 박사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는 더 이상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NK세포가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다"며 "치료를 받은 환자 중 10년 이상 살아 계신 분이 있는가 하면, NK세포 투여 이전에 숨을 거둔 환자를 보면서 생사기로에 선 환자를 위해 치료제 연구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암 정복에 필요한 전략과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우선 기술 이전한 NK세포치료제 사업화가 성공을 거둬 백혈병 환자 치료에 기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췌장암 등으로 적용을 확대해 다양한 난치성 암 환자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아울러, 항체, 항암제, 유전자 등과 혼합해 난치성 암 환자에 NK세포치료제를 적극 활용하고, 기존 치료제로 한계가 있는 난치성 암 정복을 위해 바이오마커 발굴 및 AI 기술 등에 접목, 보다 정밀한 맞춤형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나아가, 암세포에 들어가면 무력화될 수 있는 NK세포를 개선하는 후속 연구와 함께 30%가 한계치인 항암치료제 효능을 보완하고, 백신 개념을 암에 도입한 '암 백신'으로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겠다는 구상도 언급했다.

◇'한 우물 연구'·'평생 연구' 초석 만들어야=최 박사는 평생 한 분야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연구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시류나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 분야를 장기간 수행할 수 있는 환경과 물리적 나이에 상관없이 연구역량을 인정받으면 평생 연구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시대 흐름에 맞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며 "한 가지 연구 주제를 오랫동안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가 더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그러면서 "장기간에 걸친 기초 연구를 많이 해야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며 "한 우물을 파는 연구와 함께 해외 유수한 연구자와 공동연구를 통해 자신의 연구 지평을 넓혀 연구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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