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角角]"어디사세요?", 물어선 안 되는 PC가 됐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2/20210226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角角]\"어디사세요?\", 물어선 안 되는 PC가 됐다")
날씨와 사는 동네 얘기는 말문을 트는 단골메뉴다. 서먹서먹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공감대를 넓혀준다. 그런데 이제 사는 동네 얘기는 삼가야 하는 '심각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집값 격차의 확대로 사는 동네와 집이 '부(富)의 신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사세요?"라고 묻는 건, 좀 과장해 말한다면, '당신의 경제적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상대에게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다. 사는 지역, 집, 심지어 도시에 관한 질문은 중요한 협상 자리에선 절대 피해야 할 금기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추세는 비단 한국적 상황만은 아니다. 장소에 따라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 2000년대 이후 지식정보사회화는 전 지구적으로 대도시와 지방, 숙련과 비숙련, 정보의 노출과 소외에 따라 지리적 공간적 이질화를 촉진시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대대적 금융완화에서 더 나아가 거의 무한정 양적완화로 몰아넣었고, 그 과정에서 금융 접근성에 따른 부의 편재를 가중시켰다. 여기에 사상 초유의 전 세계적 락다운(lock dwon)은 지리적 불평등을 심화했다. 공간적 이동이 제약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마을, 도시를 살필 시간이 늘었고 그 과정에서 좋고 나쁜 점이 드러나 차별화가 진행된 측면도 있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전국 5분위(상위 20%) 주택가격은 평균 10억2761만원, 1분위 주택가격은 1억1866만원으로 주택 5분위 배율이 8.7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 격차는 최근 들어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5분위 평균 주택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28.6%(2억2847만원) 올랐고, 1분위 주택가격은 5.8%(65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더 심각한 것은 지방의 중소도시는 집값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데 반해 서울 등 수도권은 값이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의 5분위 주택값은 20억원이 넘었다. 주택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지 떨어질지 예상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은 사는 동네, 도시간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통계청 '2019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19년 11월 1일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외국인 포함)는 5178만 명으로 이 가운데 수도권 인구는 2589만 3000명이다.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어디에 사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 에티켓을 넘어 터부가 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성적(性的) 인종적 경제적 신체적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어 불쾌감을 주는 언어적 표현을 없애자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이제 사는 집이나 동네, 도시까지 삼킨 느낌이다. 1980년대 미국 대학들에서 시작된 PC 운동은 오바마 시대에 절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긴장을 풀어주고 벽을 허물어주던 동네 이야기가 'PC'가 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지리적 공간적 격차를 줄이는 정부 정책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시장에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뤄져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국내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급정책에 실패하면서 가뜩이나 좁은 선택지에서 특정 타입의 주택과 지역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선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앞으로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음은 제도적 접근인데 특정 지역의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다. 흔히 '헨리적 해법'으로 불린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대도시의 부동산이 급등하는 이유는 집적이익(集積利益)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집적에서 생기는 모든 이득이 토지주들에게 임차료로 귀속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그 해당하는 부분만큼 세금으로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집적이익은 거기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창출한 결과이지 토지주가 지가상승에 기여한 부분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득에 대한 응분(應分) 면에서 헨리 조지의 주장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어떤 자산 값의 상승이 꼭 기여 여부로만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짝을 이루는 시장자본주의에서 사유재산권의 보장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양의 기반이다. 사유재산권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이를 억압하면 사회와 국가는 발전할 수 없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얻은 결론도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포용적 제도야말로 사회발전의 요체라는 것이었다. 토지 소유에 따른 법적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적이익과 법적 권리를 어떻게 평가해 토지주에게 합당한 이득이 돌아가게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옥스퍼드대 폴 콜리어 교수는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otalism)에서 "(헨리 조지는) 지가 상승으로 창출되는 지대(地代)와 자본소득을 구분했고, 자본소득은 윤리적으로 합당하다고 봤다"며 절충을 시도한다.
콜리어 교수는 대도시 임차료 연구를 통해 헨리 조지의 집적이익에 대한 과세가 현대에서는 토지주들에게 귀속되지 않고 고숙련 전문직 근로자(특히 고숙련 독신자)들에게 귀속되는 점을 발견했다. 따라서 아무리 토지주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해도 집적에서 생기는 이득의 대부분을 정부가 과세대상으로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맹점을 개선하기 위한 콜리어의 해법은 의외로 고전적이다. 고숙련 전문직 근로자들이 보다 많이 집적이익이라는 '공공재'에 보상을 하도록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강화해 적합한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콜리어는 아울러 지리적 공간적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정책 의지를 확고한 목표로 내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2011년 유로권이 유로화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역부족일 때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한 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를 상기한다. 드라기 총재가 실패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천명함으로써 유로화 하락은 그쳤다. 마찬가지로 콜리어 교수는 "우리는 대도시와 지방 도시를 겨냥한 정책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디에 사느냐가 '경제적 신분'을 갈라놓는 시대에 열패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과연 삶의 미덕과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조차 부가 사람의 능력이나 신분으로 등치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는 건 사실은 따질 수 있는 능력에 보상한다는 의미"라며 "다른 이가 인식하고 동의하는 능력이, 보다 높은 레벨(보다 높은 권력)에서는 능력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전재) 다원적 사회에서 사람들은 뭐가 능력이고 뭐가 미덕인지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며 어떻게 사는 게 최선의 길인지는 논란이 많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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