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기로 하자, 시장에서는 증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부동산 매물 자체가 없어지는 '매물 잠김' 현상이 더 뚜렷해짐과 동시에 서민들의 세 부담이 한층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28일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디지털타임스와의 통화에서 "공시가격은 조세 부담의 기준"이라며 "감정평가사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공시가격을 정하도록 권한을 줘야 하는데, 그 기준을 정부에서 제시한다는 것 자체부터 잘못됐다. 말 그대로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금은 조세법정주의에 의해야 하는데, 정부 입맛에 따라 세금으로 (국민) '편 가르기'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 학회장은 "결국 시장에서 불만이 나오다 보니 여당에서 당근책으로 (중저가)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재산세 감면 등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감면 기준에 가구별 소득 수준이나 전체적인 재산 규모를 차등 적용해야만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더 올바른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공시가격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세 부담 증가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나 고령자의 경우 늘어나는 세 부담에 매각 여부에 대한 고심이 깊어질 것"이라며 "강남의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인기 지역의 수요 둔화로 거래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공시가격보다 낮은 매물이 아예 나오지 않으면서 실거래가가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세 부담에 쏟아진 매물로 실거래가가 낮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영식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공시가격을 올리면 매도자들이 공시가격 아래로 매물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오히려 실거래가 자체가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 교수는 결국 현재 부동산 시장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심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심리를 잠재우는 것과 상반되는 정부 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서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피스 등 상업시설과 반대로 주택으로만 쏠림이 나타나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과 양적 완화 때문"이라며 "투기가 원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경기가 나아진다는 가정 하에서 지금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매한 사람들의 이자 부담도 덩달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가계 빚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추진 방향과 달리 공시가격을 내려야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제안이다. 그는 "공시가격을 (시세 대비) 50% 수준으로 낮추되,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시장의 파급효과나 (과도해진 불안) 심리 등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부동산학과 교수도 "공시가격을 현실화한다는 명분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집을 가진 사람들은 늘어난 세금을 내기 위해 전세보다는 월세를 택할 공산이 크다"며 "결과적으로 집을 가지지 못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만 대폭 늘어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공시가격을 올리기보다 현재 부동산에 부과되고 있는 보유세를 조정하는 식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동준기자 blaams89@dt.co.kr
정부가 2030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맞추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지난 27일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