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끈 삼성의 성장은 세계가 극찬하는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각종 지표가 확인해준다. 이 회장이 취임할 1987년 당시 10조원 수준이었던 삼성의 매출액은 2018년 말 기준 387조원으로 약 39배나 늘어났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나 증가했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0년 동안 400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의 이 같은 엄청난 성장은 이 회장이 주도한 IT(정보기기) 사업이 이끌었다. 특히 지금 삼성운 물론 우리 수출의 20% 안팎을 책임지는 반도체의 위상은 이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언제까지 기술속국인가"…'반도체 코리아' 이끈 이건희= 사실 이 회장이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누구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상상하진 못했다. 1974년 이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사재를 털어 인수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두가 반대했다.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일본보다 20년, 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가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낼 정도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언제까지 기술 속국이어야 하나"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며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하지만 1973년에 닥친 오일쇼크에 일본 기업의 덤핑 공세까지 겹치며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한동안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1982년 부친인 호암 이병철 창업주가 일본과 미국 등을 둘러보며 반도체 산업 시찰에 나섰고, 1983년 2월 이른바 '도쿄 선언'을 하면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삼성은 그 해 기적을 이뤄냈다.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그 해 11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전했다. 일본이 6년 만에 이뤄낸 성과를 단 9개월 만에 '초음속'으로 해낸 것이다.
이후 삼성의 반도체는 미국, 일본과의 기술차이를 빠르게 좁혔다. 10년 뒤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고, 지금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사실상 오늘날 '반도체 코리아'의 신화는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이 과정에서 4M D램을 개발할 때 스택 방식을 결정한 것이나 16M D램 양산을 위해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를 도입한 것은 모두 이 회장의 결단으로 알려졌다.
◇'애니콜' 신화로 휴대전화 1위 우뚝=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휴대전화 시장 개척에 나섰다. 삼성이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할 무렵이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카폰, 가정용 무선전화 정도만 보급되던 시기에 이 회장은 "반드시 1명 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를 예견했다. 이후 이 회장은 애니콜 브랜드로 휴대전화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고, 1995년 8월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1위에 올랐다.
당시 이 회장이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이 회장은 "이런 엉터리 물건을 만드는 정신은 무엇인가"라고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하며, 그해 3월 15만대, 150여억원 어치의 휴대전화 제품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또 한번의 시련도 있었다. 이 회장이 소위 경영승계 의혹 관련 '삼성특검'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사이 세계 시장에는 애플의 '아이폰'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삼성은 아이폰의 국내 시판을 앞둔 2009년 8월 기존의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한 '옴니아2'를 내놨다. 그러나 '모양만 스마트폰 아니냐'는 등의 차가운 반응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이듬해 그룹의 역량을 총 결집한 '갤럭시S'를 선보이며 비로소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갤럭시S가 애플을 위협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삼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갤럭시탭, 갤럭시S2, 갤럭시S3를 잇달아 출시하며 애플을 빠르게 추격했다.
2011년 3분기 삼성은 마침내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IMF 선제대응·상생·동반성장'…100년 기업 토대를 만들다= 이 같은 괄목 성장에도 이건희 회장의 위기의식은 지속됐다.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 가입한 1996년, 삼성이 연평균 17%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을 당시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 중이던 이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이 회장은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삼성은 직후 비상경영에 돌입해 3년 동안 원가·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한계 사업에 대한 과감한 정리와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삼성은 한 발 빠른 체질개선으로 1년 뒤인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능력 위주'의 조직문화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도 이끌었다. 1995년 삼성은 공채 학력제한을 폐지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 폐지 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만든 것도 이 회장의 업적 중 하나다.
동반성장의 개념도 이 회장의 경영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취임 2년차인 1988년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주목을 받았고, 하청업체라는 말 대신 '협력업체'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었다.
1996년 신년사에서는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신경영의 동반자"라고 선언했다.
이 밖에도 이 회장은 1996년 '디자인 혁명의 해' 선언, 2005년 '디자인 전략회의' 등으로 단순 제조업의 한계를 넘어 디자인 경영의 기틀을 다졌고, 이듬해인 2006년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그 해에만 300만대를 판매하며 세계 TV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 회장은 삼성을 국내를 넘어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고,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100년 기업의 밑거름을 만들어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이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나아가자"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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