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일국양제의 종말… 홍콩 다음은 대만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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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일국양제의 종말… 홍콩 다음은 대만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지난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보안법' 초안을 압도적 표 차로 통과시켰다. 투표에 참여한 2885명 대표 가운데 반대는 1명뿐이었다. 초안은 홍콩과 관련한 국가 분열·국가 정권 전복 행위나 테러활동 등의 처벌, 외국의 내정간섭 금지, 보안법 집행기관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초안을 토대로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법률을 구체화하면 홍콩 정부가 관련 절차를 거쳐 공표하게 된다. 오는 8월쯤 법이 시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에 대한 법을 직접 제정한 것은 홍콩 주권이 반환된 이래 처음이다.

미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이 스스로 홍콩인과 국제사회에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휴지조각이 됐다면서 보복에 들어갔다.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대중 압력을 강화한 트럼프 미 행정부를 상대로 결사항전 태세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 대만 등 영토와 주권을 둘러싼 핵심이익에선 일절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번에도 같다. 국가안보 강화라는 이익을 위해선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미중 관계는 이제 지극히 긴박한 국면을 맞이했고, 홍콩은 미중 대결의 최전선이 됐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일국양제의 종말… 홍콩 다음은 대만이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난징(南京)조약을 통해 홍콩섬을 할양받은 때가 1842년이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 따른 베이징(北京)조약이 체결되어 주룽(九龍)반도 남부가 영국에 넘어갔다. 이어 주룽반도 북쪽의 신제(新界)를 조차한 것이 1898년 7월이다. 조차 기한은 99년이었다. 아무리 긴 세월이라도 언젠가 그날은 찾아온다. 1982년부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홍콩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1997년 7월 1일, 영국 식민지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왔다. '홍콩 반환'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서방의 관심은 영국이 홍콩에 남긴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지에 있었다. 중국도 서방과의 무역 및 투자 창구로서 홍콩의 특수한 지위를 유지하고 싶었다. 결국 양측의 이해가 일치하는 일국양제가 도입됐다. 중국은 일국양제라는 간판 아래 50년 동안 고도의 자치권과 자본주의 제도 유지를 약속했다.

이런 일국양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홍콩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홍콩의 '미니 헌법'이다. 이 법 23조에 따르면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홍콩 정부 스스로 제정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복선이 되었다. 홍콩 법률은 기본적으로 홍콩 입법회를 통해 제정된다. 하지만 중국 전인대는 일국양제에 따라 국방과 외교 분야의 법률을 만들어 이를 홍콩기본법에 부칙으로 삽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있다.

이런 홍콩기본법에 근거해 중국은 언제든지 국가보안법을 도입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신중을 기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미국 내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서는 등 피해가 확산되면서 재선에 적신호가 켜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극언했다. 이러니 중국은 미국을 배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참에 작년부터 이어지는 홍콩 시위를 끝내버리자고 결론내고 이번 보안법 통과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서 다른 곳, 즉 홍콩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도 숨어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중국이 홍콩 접수에 들어갔고 홍콩의 미래는 불안해졌다. 국제금융허브 홍콩의 위상은 쇠락할 것이고, 많은 홍콩 지식인과 언론인, 종교인들이 정치적 난민이 될 가능성도 높다. 남중국해를 거의 장악한 중국은 이제 홍콩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 다음 목표는 대만, 그리고 동중국해다. '중국위협론'이란 유령이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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