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詩文 한 줄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4/2020040202152369061001[1].jpg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詩文 한 줄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
예로부터 '시문'(詩文)은 한·중 간 중요한 외교수단이었다. 예를 들어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면 양국 관리와 문인들은 한시(漢詩)를 주고받으며 친교를 다졌다. 이를 '시부(詩賦)외교'라고 부른다. 조선 왕조는 두나라 인사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도 발간했다. 지난 2월 초 중국이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때 한국은 중국에 위로와 함께 지원물자를 보냈다. 이후 한국이 어려움에 직면하자 중국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마스크, 방호복 등의 방역물자가 한국측에게 전달됐다. 옛 시구들도 함께 왔다.
주한중국대사관은 지난 2월 27일 긴급 조달한 2만5000여개의 의료용 마스크(KF94, N95)를 대구로 보냈다. 마스크를 실은 화물차에는 '도불원인, 인무이국'(道不遠人, 人無異國)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당나라에서 유학했던 신라 최치원이 국보 제47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에 남긴 구절이다.
최치원은 당에서 돌아온 뒤인 887년 신라 정강왕의 명을 받고 진감(眞監) 선사의 비문을 지었고 글씨도 직접 썼다. 진감 선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한국에 최초로 전파한 인물이다. 804년(애장왕 5년) 31살의 늦은 나이에 당나라 사신의 배에 뱃사공을 청하여 바다를 건넜다. 10년 동안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남종선(南宗禪)과 범패 음악을 널리 전했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詩文 한 줄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4/2020040202152369061001[2].jpg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詩文 한 줄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
산둥(山東)성 정부, 중국 공공외교 부문의 싱크탱크인 차하얼(察哈爾)학회가 한국에 지원한 물자에는 '간담매상조, 빙호영한월'(肝膽每相照, 氷壺映寒月)라는 문구가 사용됐다. 조선시대 문학가 허균이 지은 시 한 소절이다. '간과 쓸개를 꺼내 서로를 비추니, 얼음 항아리에 비친 달빛처럼 투명하다'로 해석된다. 함께 손잡고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뜻일 것이다. 이 시구는 지난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이번엔 한국으로 보내지는 방역물품 위에 붙었다.
3월 16일 랴오닝(遼寧)성의 긴급 방역물자가 난팡(南方)항공 비행기에 실려 한국에 도착했다. 물품에는 '세한송백, 장무상망'(歲寒松柏，長毋相忘)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구절이다. '추위에도 의연한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오래도록 서로의 우정을 잊지말자'라는 뜻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 글귀가 담겨있었다. 김정희는 중국 지식인들과 깊은 교류를 나눴던 인물이다. 김정희는 24살 때 아버지의 청나라 방문에 동행해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 머물며 고증학의 대가였던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당시 옹방강의 나이는 78세였다. 그는 총명한 김정희를 아꼈다. 김정희가 추사체라는 새로운 글씨의 지평을 열었던 데에는 이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중국 푸싱그룹(復星集團)이 보낸 한국 지원 물자에는 '백상화점개, 해평천근명'(陌上花漸開，海平天近明)가 적혀있었다. 중국 5대10국 시기의 오월왕(吳越王)과 명나라 문인 진여언(陳汝言)의 시문을 각각 각색한 글귀다. 길가의 꽃들이 점점 피어나고 해수면 위의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을 보듯이, 한·중이 코로나19를 반드시 이겨낼 것이란 의지가 담겨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시문'이 한중간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는 느낌이다. 같은 한자(漢字) 문화권에 속해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통하는 문화 전통이 있으면 마음은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양국의 우호가 더욱 깊어지고 교류와 협력이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서 논설위원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