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급여반납 앞서 일이나 잘하세요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DT현장] 급여반납 앞서 일이나 잘하세요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국민들은 공무원들이 월급을 반납하는 걸 원하는게 아니라, 받는 만큼 일을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문재인 대통령과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들을 시작으로 급여 반납 운동이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민간까지 확산하고 있지만, 이를 보는 직장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내 월급도 깎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행·레저·유통 등 업계는 진작부터 근무시간 단축과 급여 삭감이 진행 중이고, 최근에는 정유·조선 등 제조업까지 확산하는 중이다.

물론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고통분담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자르는 것보단 함께 나누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급여 반납 확산 움직임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첫째, 급여 반납이 재정적자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월급 30%를 다 돌려받은들 수백조원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둘째, 기업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월급을 줄이면, 기업들도 "대통령도 자기 월급을 줄이는데"라면서 너도 나도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결정하면 바로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기업은 한번 내려간 급여를 다시 올리기가 쉽지 않다. 노조의 힘이 센 대기업들은 노동자에 유리한 우리 법 체계상 급여 반납 또는 삭감이 현실화 되긴 쉽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노조가 없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회사가 임금 삭감 또는 반납 방침을 밝힐 경우 이를 받아들이거나 그만둘 수 밖에 없다. 반납은 자발적인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직장인이라면 사실상 반 강제라는 것을 모두 안다.

급여를 내리면 유능한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올 수 있다. 최근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중국의 반도체·배터리 인재 영입이 줄을 잇는 가운데, 유능한 인재들이 중국 업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다수의 기업 경영진들도 과거와는 달리 '불요불급(不要不急)'한 비용을 최대한 줄인 뒤 마지막 카드로 급여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할 만큼 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셋째,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난 뒤 내수 진작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유동성 지원과 함께 개인에 대한 현금 지급, 실업보험 강화 등을 제시한 이유 역시 기업 유동성 지원과 내수 진작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과거 IMF 때는 성장 일변도로 가다 외화 부족에 빠졌기 때문이지만, 지금의 위기는 돈이 시장에서 돌지않는 소위 '돈맥경화'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을 억제하고 혁신 신사업의 물꼬를 터주지 않다 보니 자본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셀러리맨의 지갑은 지역 영세 상권을 살리는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불안감이 더 커진다. 지금 당장은 빚을 갚지 못하는 영세 상인들의 자금 압박을 해소해 주는 것이 맞지만, 그 다음에 다시 돈을 벌지 못한다면 긴급 자금 지원도 단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사실 내수시장 침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여기에는 정부의 책임도 일부 있다. 최근 기득권에 막혀 '타다' 사업을 사실상 접은 것처럼, 여러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신사업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노골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로 안정화를 유도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시장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영세 상인들의 숨통을 적기에 해소해 줄 수 있는지 우려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초기에도 정부는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판단하고 내수 활성화를 권장하다,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자 사회적 거리두기로 급전환 했다. 지금 정부는 미국, 유럽보다 잘 막았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더 잘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쳤던 것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금을 내놓았는데, 이후 그 금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전시행정이 아니었나는 지적도 나온다. 고통 분담이라는 차원에서 급여 반납도 취지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국회의원들도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지만 실제 위기 해소에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된다. 공무원들이 월급 값을 했으면 좋겠다는 우려도 여기에서 나온다. 시장을 믿고,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 하면서 산업과 내수 시장을 살린다면 월급 굳이 반납 안해도 된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