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공포의 경제학

김승룡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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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공포의 경제학
김승룡 정경부 차장
알제리 오랑시(市)에 페스트가 발병한다. 도시는 봉쇄된다. 자고 나면 수백명이 죽어 나가자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고, 괴소문과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진다. 페스크 균을 죽이겠다며 온 마을에 불을 놓아 도시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다. 매일 폭동이 일어난다.

공포가 삶을 지배하자 교회에 사람들이 대거 몰린다. 신부 파늘루는 인간의 죄를 묻고자 하느님이 페스트로 형벌을 내리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다. 가진 자들은 우비를 입고 그 위에 기름칠을 하면 페스크 균을 막을 수 있다는 갖가지 가짜뉴스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번다.

의사 리외와 지식인 타루 등은 자율봉사대를 만들어 페스트와 싸우기 시작한다. 불법적 방법까지 동원해서라도 도시를 탈출하려고 했던 신문기자 랑베르도 리외와 타루의 진정성과 연대감을 느끼고 봉사대에 합류한다. 그러던 중 실험 중인 페스트 백신 혈청을 맞은 아이의 주검 앞에서 의사 리외가 파늘루 신부에게 묻는다. "페스트가 신이 내린 형벌이라면 이 아이의 죄는 무엇입니까?" 신부는 대답하지 못한다. 얼마 뒤 신부도 페스트에 걸려 죽는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줄거리다. 1947년 출간된 이 소설이 70년이 넘은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빼닮아 놀랍다.

특히 감염병이 확산해 도시가 봉쇄되고, SNS 등을 타고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는 점도 그렇고,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인 시민들이 감염자를 '낙인' 찍고,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이 지금과 어쩌면 그리 판박이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커다란 벌레로 변하자 가족마저 그를 혐오하고 죽길 바라는 모습처럼,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진자를 마치 벌레 보듯 한다. '신천지'로 대변되는 신흥 종교가 공포를 이용해 신도를 늘리고, 구할 수 없는 마스크 가격을 크게 올려 한 몫 노리는 장사치들도 그렇다.

공포는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고, 경제도 병들게 한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각종 사재기가 등장하고, 주식시장에선 공매도가 남발하며, 국가적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해진다.

세계증시 동반 대폭락을 기록했던 지난 3월 9일, 미 증시의 공포지수(VIX)는 장중 한 때 60을 넘어서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심리라 했는데, 그 중에서도 공포 심리만큼 경제시스템을 빠르게 붕괴시키는 건 없다.

지금도 코로나19는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확산 중이다. 코로나19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7~8월을 넘어서도 잡히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에 대공황이 올 거라는 불안감마저 나온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대규모 감원 태풍이 불고,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날 것이라는 공포가 세계 경제의 목줄을 차츰 조여오고 있다.

카뮈가 소설 '페스트'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공포를 이기고 재난을 헤쳐내는 법'이다. 리외나 타루처럼 공포가 두려워 회피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정면으로 공포를 맞아 싸워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심보다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역설한 것이다. 이것이 카뮈가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다.

요즘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그러나 과연 거리두기가 옳은 방법일까. 거리두기가 또 다른 반목과 개인 이기주의를 확산하진 않을까. 거리두기보다는 좀 더 사회적 공감과 연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지 않을까. 감염병은 치료할 수 있어도 감염병이 남긴 인간에 대한 증오와 주홍글씨는 잘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14세기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몬 페스트는 종교의 무력함과 자기반성, 이로 인한 문화적 부흥, 즉 '르네상스'라는 변혁을 몰고 왔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우리 사회, 경제에 개인보다는 함께 하는 가치를 중시하는 신(新) 르네상스가 도래하길 기대한다.

김승룡기자 sr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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