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선거 앞에 장사 없다

김미경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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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선거 앞에 장사 없다
김미경 정경부 기자
트로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가수 유산슬의 돌풍이 심상치 않다. 데뷔곡뿐만 아니라 후속곡까지 연이어 히트를 하면서 거물급 신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후속곡인 '사랑의 재개발'을 들은 뒤 괜한 걱정이 생겼다. '사랑의 재개발' 도입부인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뇌리에 스친 생각은 "정치인들이 들으면 선거송으로 엄청 탐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SNS나 블로그, 카페글 등을 보니 비슷한 걱정을 하는 글들이 많았다. 어느 SNS 사용자는 정치권이 '사랑의 재개발'을 선거송으로 가져다 쓸까봐 잠이 다 안 온다고 했다. 매우 공감했다. 곡에 '정치적 중립성'을 부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갈이'와 '새 바람'은 선거철이 되면 항상 빠지지 않고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다. 그야 말로 "싹 다~" 갈아 엎어달라는 국민적 요구와 이대로는 '선거 필패'라는 정치권의 불안감이 혼합된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치란 본디 권력의 최정점을 찍는 기득권이란 인식이 강한데다 정치무관심을 넘어 정치혐오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으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고육지책인 셈이다. 특히 오는 4월15일 치르는 21대 총선은 더하다. 20대 국회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한심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4년 내내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반복하다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얼미터의 '20대 국회 협치 평가' 여론조사(조사기간 1월17일) 결과를 보면 부정평가가 90.6%로 압도적이다. 긍정평가는 7.7%에 불과하다. 낙제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점수다.

21대 총선에서 '물갈이', '새바람' 요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KBS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4·15 선거에서 지역구 현역의원을 뽑지 않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기도 했다.

정치권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1대 총선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자유한국당은 현역 40% 컷오프를 공언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공천평가 하위 20% 감점, 경선 우선 공천, 전략공천 최소화 등 약속했다. 민주당은 40명 이상 현역 물갈이를 자신하기도 했다. 여야 중진과 초·재선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새 바람의 기류가 약해지는 느낌이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접수된 총선 지역구 후보자 신청 현황을 보면 현역의원 출마자 109명 가운데 경선 경쟁자가 없는 단수 후보자는 64명이다. 절반이 넘는 59% 수준이다.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10명 중 6명 정도는 당내 경선을 치르지 않고도 공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현역 의원 64명 중 다선 중진인 5선의 박병석(대전 서구갑), 4선의 김부겸(대구 수성갑)·김진표(경기 수원무)·변재일(충북 청주 청원)·송영길(인천 계양을)·안민석(경기 오산)·최재성(서울 송파을) 의원 등 및 지도부 출신인 이인영 원내대표(서울 구로갑)와 우원식 전 원내대표(서울 노원을), 우상호 전 원내대표(서울 서대문갑),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경기 구리), 홍익표 원내수석대변인(서울 중구성동구갑) 등이 '무혈(無血) 경선' 가능성이 커졌다.

현역 의원들이 경선 없이 공천을 받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물갈이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유한국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당내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30% 이상 컷오프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반발 조짐이 올라오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인해 기소된 의원들의 불만이 더욱 크다. 당을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었는데, 돌아오는 게 '컷오프'라면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컷오프' 명단이 확정되는 순간 당내 반발과 혼란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 공관위의 험지 출마 요구를 외면하는 중진들도 있다. 황교안 대표부터 당 안팎에서 서울 종로 등 험지 출마 요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출마 지역을 밝히지 않은 채 비례대표 차출설까지 열려 있는 터라 여타 중진들을 향한 험지 출마 요구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 역시 험지 출마 권유에도 불구하고 각각 경남 밀양, 경남 거창 등 고향에서 출마하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여야 모두 물갈이 강도가 약해진다는 것은 어느 쪽이든 선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여당은 두드러지는 지지율 내림세를, 야당은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감을 극복할 수 있을지 두렵다. 리스크가 커지니 안정감을 찾아 주저앉게 되는 거다.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변화와 혁신이 없는 정치를 지지할 국민은 없다는 것이다.

김미경 정경부 기자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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