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규제 장벽… 넘을 방법 없는 中企

시설기준에 전문인력 채용까지
안전기준 항목 '79개 → 413개'
1개 물질 최고 3000만원 비용
대책 마련 못해 공장 문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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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옥죄는 '화관법 폭탄'
<上> 대책도 없이 한 달 뒤 시행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해야죠. 차라리 공장을 하지 말라고 하던지…."

2020년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한 50대 중반의 중소기업 사주 손판개 대표는 짙은 부산 사투리로 한숨부터 내쉬었다. "도대체 정부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겄어." 손 대표는 부산시 사상구에서 자동차 부품 도금을 하는 공장을 20여 년째 운영해왔다. "정부는 시설설비에 돈 좀 들이면 된다카는데, 이게 그게 아닌기라." 손 대표는 이번 화관법을 앞두고 정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화관법으로 골머리를 앓는 중소기업은 손 대표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화관법 적용을 받는 중소제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7월에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화관법상 기준을 지키기 어렵다는 업체는 약 43%, 절반 가량에 달했다.

화관법은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한 법이다. 안전설비 강화가 법의 특징이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은 장외영향 평가서→취급시설 검사→전문인력 채용 절차를 거쳐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충족해야 하는 안전기준 항목은 79개에서 413개로 확대됐다.

해당 공장은 벽과 바닥의 안전설비를 새로 갖춰야 한다. 정부 추산은 화학물질 하나를 등록하는 데 대략 1200만 원 가량 경비면 된다고 한다. 이 돈만 해도 손 대표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에선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런데 실제 경비는 정부 쪽 계산보다 많게 나오기 일쑤다.

그래서 아예 손 대표처럼 손을 놓고 정부 처분만 기다리는 중소기업이 현재 태반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거의 '배째라'식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절망적 상태다. 새 화관법이 적용돼 설비 자체가 화관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안전설비 미비로 사고가 발생하면 벌금은 무려 2억 원까지 오른다.

경비 2000만 원 가량을 새로 들이나, 벌금을 맞거나 모두가 영세 중소기업 입장에선 감당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화관법을 지키려면 바닥에 턱을 만들어야 된다든지, 벽을 일정 간격 띄어야 한다는 등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며 "이걸 따르려면 공장 레이아웃을 다시 해야 하고 바닥 방지턱도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공장을 일정 기간 중단해야 해 영세 기업의 경우 법 시행기간에 맞춰 일을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화학물질 등록 비용의 경우 물질 종류마다 테스트 시간이 달라 어떤 것은 100만 원이면 되지만, 어떤 것은 1억 원 이상"이라고 했다.

정책과 이를 적용받는 현장 간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업체에선 최소한 2000만∼3000만 원 가량 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비용을 전부 기업이 부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중소업계에선 무조건적인 정부 지원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취급시설이나 등록물질에 대한 기준이 높게 설정된 데 대한 애로가 가장 크다.

정부는 지난달 기업이 받아야 할 심사를 간소화하는 등 보완책을 다급히 내왔다. 하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서 상근부회장은 "국민 안전을 도모하는 목적에서 도입된 법이기 때문에 기업들도 충분히 인정해야 하고 부담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모든 규제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들이 그 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너무 높게 설정돼있는 취급시설 기준이나 등록물질 기준을 경쟁국 수준으로 맞춰달라"고 호소했다.

은진기자 jine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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