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정경부장
![[박선호 칼럼] 미래의 촛불, 일당백의 촛불](http://contents.dt.co.kr/images/201909/2019092302102269058001[1].jpg "[박선호 칼럼] 미래의 촛불, 일당백의 촛불")
이 시대 광장의 촛불은 스스로를 태우며 내지르는 절규다. "부조리를 밝혀 없애자"는 소리없는 함성이다. 그 촛불의 주인은 오직 민(民)이다. 그래서 '민주(民主)의 촛불'이다. 온갖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개개의 촛불이 모여 들불이 되는 순간, 그 순간 어떤 부조리도, 어떤 위선, 어떤 권력도 그 불길에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태웠던 촛불을 보고 가졌던 신념이다. 그런데 한 때 이 신념이 스스로 '촛불의 주인'이라 자청하는 이들을 보고, '촛불의 아이콘'이라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부조리를 보고 잠시 흔들렸었다. 다행히 이 신념이 요즘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있다. 다시 스스로를 태우는 촛불이 되고 있다.
사실 필자 역시 촛불의 하나였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되는 그 순간 국회에 있었다. "역사의 순간에 역사의 장소에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기억도 있다. 촛불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신문사에 입사해 그렇게 20년이 넘게 주로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치며 취재현장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본 필자에게 탄핵 당시는 너무나 몰상식했다.
당시 광장에서 만난 지인은 "네가 나온 걸 보니 정말 달라지겠네"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소위 '촛불 정권'이라는 현 정부가 탄생했다. 그 결과에 만족했다.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흔들렸던 것은 자칭 '촛불의 주인'이라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였다.
현 정부 출범 후 이듬해 여름의 어느 날 바뀐 정권 덕에 간부로 승진한 공사의 한 인사와 저녁 술자리를 했다. 우연히 현 정부의 외교정책이 화두가 됐다. 나름 외교, 특히 동북아 지역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가 현 정부 외교의 문제점이라 생각하는 것을 지적했다. 돌연 이 간부가 말을 잘랐다. "당신 보수지?"라고 따졌다. 엉뚱한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저 쳐다보는 내게 그는 "난 지금까지 9년을 모든 생각을 마음에만 품고 살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하는 순간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며 격한 감정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끝으로 "이제 촛불혁명의 시대다. 우리가 주인이다. 내가 그렇게 참아야 했으니, 보수는 이제 최소 9년은 입 닫고 살아"라고 말했다.
그 뒤 그 간부를 본 일이 없다. 볼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간부보다 덜했지만 뒤에서도 그와 비슷한 '촛불의 주인'들은 계속 만났다. '내 촛불이 도대체 뭘 한 것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점차 스스로가 촛불이었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특히 최근 조 장관 사태를 보면서 무력감에 허무하기까지 했다. 조 장관은 다음의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백번양보를 해도 어찌 자녀의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사문서 위조 혐의까지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판결 전 무죄 추정을 한다고 해도 어찌 검찰이 기소까지 하게 된 것을 그냥 의혹이라고만 할까?", "앞의 의혹만으로 사퇴한 수많은 후보는 괜찮고, 조국 후보가 사퇴를 하면 어찌 '나쁜' 선례가 될까?" "다른 장관도 아니고 법무부 장관은 영어로 '정의의 장관'(the Minister of Justice)인데 도덕기준이 크게 떨어져 보이는 조 후보자가 과연 적격한가?", "사심 가득해 보이는 조 장관이 과연 '사심없는 검찰개혁'을 하기는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천명한 이가 왜 다른 장관도 아닌 법무부 장관을 해야 하는가?"
답을 못찾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수 있는지 모를 때, 그 때 다시 촛불이 켜졌다. 어린 대학생들이, 우리 미래를 젊어질 인재들이 먼저 나선 것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부산대 등 당대 우리 사회의 동량들이 먼저 촛불을 켰다. 이어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나섰다. 서울대는 조 후보자가 다녔던 학교이고, 그가 교편을 잡았던 곳이다. 서울대 법대를 다녔고, 그 곳의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조국 장관은 우리 사회 최고의 법률 전문가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3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조국 장관 임명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학생들은 촛불을 밝혔다. 스스로를 태워 부조리를 밝히며 '고치라!, 수정하라!' 소리없는 함성을 외쳤다. 아직 들불이 아니라 경시하지 마라. 이 학생들의 촛불은 그냥 촛불이 아니다. 미래의 촛불이요, 일당백의 촛불이다. 필자처럼 의기소침해진, 무력해진 촛불을 깨우는 촛불이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의 말처럼 "하나의 불씨가 들불로 타오르는 법"이다. 맹자는 "민(民)은 물이요, 권(權)은 배"라, "물은 배를 띄우기도 침몰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촛불의 진정한 주인은 현 정권이 아니다. 조국 장관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이 땅, 이 나라의 민(民)이다.
박선호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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