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중성자과학연구부장
![[기고] 원자에서 시작하는 제조업 르네상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7/2019071102102369660001[1].jpg "[기고] 원자에서 시작하는 제조업 르네상스")
대한민국 제조업은 선진국 대비 낮은 기술력, 임금 대비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하루하루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정부 주도로 제조업 굴기를 외치고,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으려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노력을 다룬 바 있다. 재미있게도 중국의 정책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연상케 한다. 국적에 관계없이 세계적인 과학자를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으며, 여기에는 한국 심지어는 대만의 과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만난 대만의 한 대학 교수가 대만 젊은이들이 "대만은 시골 같은 분위기라 싫어하고, 국제화된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중국이 선진국과의 제조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물질과학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과학은 첨단소재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다시 기계로 연결되는 제조업 사이클의 맨 앞 단에 존재한다. 과학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축적의 시간을 가진 선진국과의 격차를 따라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물질 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 게놈 엔지니어링 사업을 벌이는 등 전방위적 투자를 통해 이 축적의 시간을 건너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잘 해왔던 제조공정 혁신만으로는 중국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중국 제조업 굴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대한민국의 제조업이 될 것이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원자이기 때문에 물질과학은 원자 단위에서 연구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하는 실리콘은 한계를 맞고 있다. 과학자들은 원자 배열이 다른 새로운 실리콘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실리콘 2.0이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은 고성능의 반도체와 태양전지 등에 무궁 무진한 응용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자 단위에서 물질을 연구할 수 없으면 이와 같은 신물질 개발은 불가능하므로 물질 내에서 원자가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 지 측정해주는 연구시설과 장비는 물질과학에 필수적이다. 중국은 그 중에서도 물질과학의 핵심 연구시설이라고 하는 방사광가속기와 대형 중성자 연구시설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질과학에는 만만치 않은 저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과 출연연구소에는 뛰어난 인재가 다수 포진하고 있고 연구 장비에 있어서도 중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포항의 방사광가속기와 대전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연구시설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몇 년째 제대로 가동을 못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우리 과학자들이 총성 없는 전쟁에서 첨단무기 없이 싸우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제조업 르네상스의 화두를 던졌고, 이제 공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로도 넘어왔다. 제조업 부흥을 위해서는 우리도 사람과 물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로'를 조속히 정상화시켜 이 시설이 국가적 연구시설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겠다. 우리나라도 제조업의 영속적인 성장을 위해 원자에서부터 제조업 르네상스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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