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에 신사임당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화폐 도안은 조선시대 이(李)씨 남성들의 독무대였다. 국민들이 존경하고 역사적으로 업적이 있는 인물을 선정했다는 화폐 도안. 1970년대 초반에 채택된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은 다양한 성(姓)과 성별(性別)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에 해당하는 1950년 이후 1962년 화폐개혁 이전까지 발행된 21종류의 은행권에는 '대한민국의 독립 또는 건국을 상징하는 도안 소재'가 주로 이용됐다. 이 시기의 지폐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초상, 광화문, 탑골공원, 거북선, 독립문, 무궁화(한국은행 휘장) 등이 등장한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의 경우 1960년 초반까지 '건국의 상징'으로 각종 은행권에 등장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새로운 경제 질서 확립을 상징하는 뜻에서 세종대왕 초상(천환권, 오백환권)과 모자상(母子像, 백환권)으로 대체됐으나, 1962년 6월 10일에 단행된 제2차 화폐개혁으로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
제2차 화폐개혁으로 500원권, 100원권, 5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 50전권, 10전권 등 8개 권종이 새로 도입되면서 은행권에는 상당기간 동안 인물초상 대신에 숭례문, 독립문, 해금강 총석정, 경회루, 탑골공원, 첨성대, 거북선 등 건축물 또는 자연환경과 관련된 도안만이 채택됐다. 다만, 1965년 발행된 100원권의 앞면에만 예외적으로 '세종대왕 초상'이 등장한다.
1972년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새로운 고액권이 필요해짐에 따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오천원권, 만원권, 천원권 액면이 새롭게 도입됐다. 이때부터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이 우리나라 화폐의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당초 만원권에는 석굴암 여래좌상을 도안소재로 사용하려 하였으나 일각에서 정부가 특정 종교를 두둔한다고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세종대왕 초상으로 최종 확정됐다. 국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과정을 거친 5만원권과 달리 오천원권, 만원권, 천원권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이들을 자체적으로 선정해 발행이 이뤄졌다.
2009년 6월 5만원권이 발행되면서 만원권의 입지는 급격히 줄었다. 경조사비 등의 용도로 오만원권이 인기를 끌면서다. 실제 만원권은 오만원권이 발행되기 이전인 2008년 26억7000만장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해 말 만원권 유통 장수는 15억1500만장으로 정점이던 2008년보다 10억장 이상 줄어들었다. 오천원권 유통은 지난해 2억7900만장으로 전체 지폐의 5.3%를 차지했다. 천원권은 지난해 1년 전보다 1.1% 늘어난 15억9800만장으로, 전체 시중 유통 지폐의 30.2%를 차지했다. 진현진기자 2jinhj@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