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출시 10주년 기념 한국조폐공사 취재
5만원권 28장 인쇄된 종이, 1시간에 8000장 찍어내
한국조폐공사, 현금 수요 줄자 다양한 활로 모색
"지금 들고 있는 5만원권 뭉치가 총 5억입니다. 5억."
투명 비닐로 포장된 5만원권 10다발. 1다발에 1000장씩 띠지로 묶여있다.
이 지폐들은 조폐공장에서 인쇄·건조 과정을 마치고, 한국은행으로 옮겨지기 직전의 5만원권이다.
샘플 돈뭉치를 들어봐도 좋다는 조폐공사 관계자의 말에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아파트 한 채 값을 안아봤다. 현금 5억원의 무게는 10kg정도로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그렇다면 흰 종이는 어떻게 신사임당이 새겨진 5만원권으로 탈바꿈했을까. 그 과정을 경북 경산시 소재 한국조폐공사의 화폐본부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봤다.
지폐를 생산하는 은행권 전용시설에서 기계들은 5만원권 28장이 인쇄된 가로 519mm, 세로 671mm의 종이 한 장을 1시간당 8000장 찍어낸다. 한국조폐공사 제공.
18일 오후 1시경 경산역에서 15분거리인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정문에 도착했다. 멈춰선 버스 안에서 기자단은 휴대폰 카메라 렌즈 위에 '촬영을 금지한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생산시설 내에서 촬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출입증을 건네받았다.
한국조폐공사는 '가급' 국가 중요시설이다. 보안 등급만 놓고 보면 청와대와 같은 수준이다. 출입 때마다 카드리더기와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화폐·주화 생산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지문인식 과정을 거친다. 또 화폐본부 중앙통제시설에서 관리하는 CCTV 426대, 카드리더기·지문인식기 등 출입통제시스템 265대가 설치돼있는데, 이를 통해 삼엄한 경비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다.
우선 지폐를 생산하는 은행권 전용시설에 들어가봤다. 잉크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이 건물은 지폐의 품질을 위해 사계절 내내 온도 23~24℃, 습도 55% 수준을 유지한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인쇄기들이 바쁘게 지폐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기계들은 5만원권 28장이 인쇄된 가로 519mm, 세로 671mm의 종이 한 장을 1시간당 8000장 찍어낸다.
시중에서 쓰이는 지폐 한 장은 약 6~7개의 공정을 문제없이 거친 제품이다. 건조와 숙성 기간을 포함해 흰 종이가 완제품인 지폐가 되기 위해선 약 40일이 소요된다.
첫 번째 관문은 '평판인쇄공정'이다. 조폐공사의 제지본부에서 가져온 백지화폐에 바탕그림을 인쇄하는 과정이다. 이때 주요 보안 요소인 은선(숨겨진 선·隱線), 은화(숨겨진 그림·隱畵), 앞뒤맞춤 태극문양, 미세문자 등이 새겨진다. 이 잉크가 마르는 데 5일 이상 걸린다.
이후 50000, 1000 등 지폐의 액면금액을 인쇄하는 스크린 인쇄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색깔이 보라색과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위·변조 방지기술이 입혀진다. 이후 한반도지도와 태극, 액면숫자, 4괘등이 그려진 홀로그램 띠를 지폐 측면에 부착하고, 신사임당의 얼굴 등을 그리는 요판인쇄과정이 이어진다.
이어 색상 번짐 등 불량한 지폐를 검사한다. 불량지폐는 전체의 3% 수준이다. 선별된 지폐는 활판인쇄 공정을 통해 고유의 일련번호가 찍혀진다.
지폐 생산 시설 곳곳에서 작업자들이 지폐의 불량 여부를 선별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제공.
앞선 과정을 통해 5만원권 28장이 담긴 종이 한 장을 단재시설에서 낱장으로 잘라내면 제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진짜 돈의 형태를 갖추는 시설인 만큼 경비가 철통 같아 견학온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다. 기자단의 통행을 위해 시설의 문을 잠시 열어두는 내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28장의 5만원권이 담긴 종이는 자동화 기계로 한 장씩 밀려 들어가 28조각으로 잘린다. 이후 5만원권 1000장씩 띠지로 1개 다발로 묶이고, 10개 다발을 투명한 비닐로 포장해 창고로 옮겨 보관한다.
버스로 3분 정도 이동해 주화제품 공장도 방문했다. 생산 시설 곳곳에 동전을 나르기 위한 레일들이 깔려 있었다. 동전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지폐보다 더 짧다. 1분당 동전 750~850개가 만들어진다. 밋밋한 소전을 기계에 투입하고, 압력을 가해 금형을 찍어내는 방식이다.
완성된 10원짜리 동전이 쏟아지면 기계가 동전을 25개씩 묶어 한 롤을 만든다. 선별 과정을 거치면서 찢어지거나 풀린 롤은 자동으로 걸러낸다. 또 자동화 기계가 박스 하나에 롤 50개씩 담아 자동으로 포장하고, 이를 창고에 보관한다.
생산과정을 거치고 포장된 지폐와 주화들은 한국은행으로 현송차(현금수송차)를 통해 전달된다. 현송차는 보안상의 문제로 총경들이 탄 호송차와 동행한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제권기관(조폐공사)에서 완성된 모든 지폐와 주화는 발권기관인 한국은행을 거쳐야만 화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며 "만약 발권기관의 승인 없이 공장에서 돈을 들고 나가 사용한다면 발권기관이 인정하지 않은 지폐를 사용한 것이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전했다.
아직까지는 바쁜 조폐공장이라지만 현금 사용률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한국조폐공사에 발주한 지폐는 2009년 10억장이었지만 2018년 6억장 수준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조폐공사도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서고 있다.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조폐공사는 지폐와 주화 생산이 주력사업이었지만 이제는 이것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위변조 방지 기술을 활용한 정품인증과 메달 등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또 환경변화에 따라 블록체인을 활용한 공공 진본성 입증 서비스를 이용해 위변조 방지 기술을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