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기술적 관점에서 본 韓美정상 `통화` 유출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 입력: 2019-06-13 18:11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포럼] 기술적 관점에서 본 韓美정상 `통화` 유출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최근 한미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 내용이 한 국회의원의 기자회견으로 공개가 되었다. 3급 비밀로 취급되는 내용을 유출한 것에 대하여 현직 외교관이 파면되고 형사 처벌이 진행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기술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한미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암호화된 통신라인의 기술적인 중요성은 언급되지 않고있어 이번 사안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각국 정상 간의 통화 등 외교 상 민감한 통신라인은 암호화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통화하는 구간의 양쪽 끝에 비화기라는 장비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장비를 통하여 정상의 목소리가 암호화 되어 상대국의 비화기에 도달하고 이를 해석하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형태로 복원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양측이 서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암호화 방법과 암호키이다. 이러한 암호는 수퍼컴퓨터를 대량으로 사용한다 할지라도 해독할 수 없도록 높은 수준의 복잡한 암호를 사용하고,주기적으로 암호키를 교체하여 혹시라도 적성국에서 해독을 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유추를 한다면 미국 대통령의 통화를 해독하고자 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통화 내용 보다도 관심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정상 간의 통화라면 양측이 같은 암호체계를 사용한다. 만약에 미측의 암호체계를 이용하여 통화를 했다면 이번에 유출된 통화내용은 그동안 이를 감청하고자 통신 데이터를 축적해온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손에 잡히는 단초'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보통 적성국의 통신을 감청하기 위하여 들이는 노력은 단순하지 않다. 최소한 몇년에서 수십년 동안 그 노하우를 축적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통신 트래픽을 수집하여 이를 막대한 컴퓨팅 역량과 수많은 사람의 혜안을 동원하여 마침내 해독을 해내고야 만다. 물론 이러한 해독의 성공은 국가 최고기밀로 분류되어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닉하기 위하여 기만 행위를 무작위로 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암호 해독을 통하여 전쟁을 이긴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침몰한 독일의 잠수함에서 암호 해독용 코드북을 입수한 다음에도 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하여 런던이 공습을 당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마침내 독일 외무대신 침머만이 멕시코에 보낸 암호를 해독하여 이를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로 만들어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의 수학자인 튜링이 만든 암호 해독 장치를 이용하여 독일의 암호를 분석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예가 있다. 미국과 영국은 전세계의 정보를 감시하기 위하여 지구 위 정지궤도에 위성까지 운영하면서 전세계의 전화, 팩스, 인터넷 등의 통신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그 수준은 스노든의 폭로로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된 사례가 있다. 2002년 10월 군 최고 기밀을 다루는 감청부대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국방부장관과 함참의장 등 군 수뇌부와 국방위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블랙북이라는 일일정보보고서를 노출했다. 이에 이 부대의 존재가 드러났고 북한 통신감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로 인하여 북한은 무선 교신 때 사용하는 암호 체계를 변경하고, 중국도 무선통신 주파수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일로 미국 국가안보국이 지원하여 창설된 감청부대의 존재와 활동내용이 알려지고 말았다. 이는 수십년 동안 축적된 국가의 암호분석 역량이 한번에 무너진 것이며 그 가치는 산정하기 어려운 규모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암호통신은 국익 측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관리하는 역량과 수준은 국제무대에서 그 나라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가늠자인 것이다. 그런데 국가 정상 간의 암호 통화 체계를 관리하는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동맹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일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수습하기 위하여 동맹국의 암호체계에 대한 긴급한 보수가 있었다면 이는 비용을 막론하고 앞으로 있을 정상 간의 통신을 이용한 즉각적이며 긴밀한 논의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정치나 경제의 많은 이슈들을 투명하고 공론화하여 논의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가 성숙하게 하고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도 국가 안보의 큰 틀 안에서 안전하고 주의 깊게 이루어 져야한다. 이는 일반시민에게도 요구되어지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인 것이다. 정쟁을 위하여 최소한의 덕목까지 저버리는 것은 더이상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