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29일 진통 끝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사법개혁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사개특위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전체회의를 열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에 필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 등 4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사개특위는 이날 회의장을 본청 220호에서 507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로 옮기고,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뒤에야 간신히 개의했다. 사개특위는 이날 회의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안을 상정한 뒤 무기명 표결에 부쳤다. 표결에는 민주당 소속인 이상민 사개특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 8명, 바른미래당 의원 2명, 민주평화당 의원 1명 등 11명이 참여했으며,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7명은 전원 표결에 불참했다. 패스트트랙 안건을 처리하려면 특위 전체 위원 18명 중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전원 참석해 의결정족수를 가까스로 충족했다.
여야 4당이 어렵사리 사법개혁안을 패스트트랙 궤도에 올리긴 했으나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패스트트랙 찬반 내홍을 겪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이날 갑작스럽게 여야 4당 합의안이 아닌 별도의 공수처 설치법안을 발의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몇 달간 여야 4당 간의 사법제도 개혁 단일안을 만들기 위해서 바른미래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이 확고한 개혁 의지를 갖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추진해왔다"면서 "지난주 오신환·권은희 두 분의 사개특위 위원들의 사보임 문제로 당내 혼란이 있었다. 사법제도 개혁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일해오신 두 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어지러운 당내 상황을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법안제출 시안에 쫓겨서 (여야 4당의)협상이 중단됐고, 바른미래당의 제안이 최종 논의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는데 (당내)의견을 같이 했다"면서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해 여야 4당 합의사항 이외의 내용을 담은 바른미래당의 공수처 법안을 별도로 발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은 곧바로 권은희 의원의 대표발의로 공수처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바른미래당은 이미 발의돼 있는 여야 4당의 공수처 법안과 함께 권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 법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할 것을 민주당에 요청했다. 김 원내대표는 "두 법안이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이후에 사개특위에서 여야 4당 합의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원칙 하에서 추가논의를 거쳐 최종 단일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수처 법안은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 예방과 부패범죄 근절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공수처에 기소심의위원회 설치 규정을 신설하는 등 공수처의 기소권을 제한했다.
마음이 급한 민주당은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수용했다. 민주당은 이날 여러 차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논의한 결과 2개 법안을 모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결론을 냈다. 강병원 민주당 대변인은 의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수용해서 (2건을 모두)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평화당은 바른미래당의 공수처 법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평화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미래당이 독자적으로 발의한 공수처 법안은 여야 4당의 합의를 깨는 것이고 패스트트랙 제도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입장을 내놨다. 평화당 측은 "패스트트랙 취지는 의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지만 특정 교섭단체가 반대해 안건 상정이 불가능할 경우 숙려 기간을 갖고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라며 "내용이 다른 복수 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면 5분의 3이 넘는 의원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법안을 동시에 찬성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문제 삼았다.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겼던 여야4당은 결국 패스트트랙이 시급하다는 명분으로 똘똘 뭉쳤다. 여야 4당은 이날 오후 8시쯤 원내대표단 회동을 갖고 여야 4당 합의안과 바른미래당 법안을 모두 패스트트랙에 올리는데 합의했다. 이들은 사개특위 내에서 병합심사를 거쳐 단일안을 만들고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야 4당은 거세게 반발하는 한국당을 뚫고 사개특위 개의를 강행, 공수처 법안 등 사법개혁안 4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위원장은 전체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내 책무와 권한이 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 지정을 처리했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바람직한 사법개혁안을 만들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논의하고 회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사개특위 심사와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등을 거쳐 최장 330일 이후 본회의에 상정된다.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이상민 사개특위원장이 29일 회의실을 옮기고,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사개특위 전체회의를 개의하자 뒤늦게 들어온 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