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들어서자 마자 즐거워야죠"… 기본 지킨 日시골마을의 `기적`

수제 미소·사케·기모노 등 100년 전통 노포 즐비
한때 세월 흐름 못 따라가 상가 속수무책 무너져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포장 디테일에 더 힘써
연 1회 초대형 이벤트, 반짝 재기에는 도움됐지만
긴 성장 잇지 못해… 사랑받는 가게 만드는 게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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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들어서자 마자 즐거워야죠"… 기본 지킨 日시골마을의 `기적`
기원제에 참가한 인파로 북적이고 있는 이와무라다 상점가


"가게 들어서자 마자 즐거워야죠"… 기본 지킨 日시골마을의 `기적`
이와무라다 상점가는 이용객이 급감하자 다양한 이벤트와 대형행사를 기획해 상점가 부활을 꿈꿨다. 사진은 이용객들로 북적이는 이와무라다 상점가 모습. 사쿠시 제공


"가게 들어서자 마자 즐거워야죠"… 기본 지킨 日시골마을의 `기적`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쇠락한 상권 일으킨 이와무라다 상인들

높이 2524m나 되는 '아사마' 산 등 도심 주변을 둘러싼 산들이 장엄하다. 3월 봄기운에 산정 만년설이 경외롭기까지 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가 더욱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스위스 알프스의 산골마을 같은 이곳은 일본 나가노현 사쿠시의 이와무라다 마을이다.

지난 11일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캠페인의 취재 차 이곳을 찾았다. '아니 한국 풀뿌리 상권을 살려내자면서 일본 시골을 찾다니?'

본래 이와무라다 마을 취재는 오랜 편집회의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지역 '풀뿌리상권'을 살려낸 선진국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했는데, 정말 많은 이들이 일본의 이 작은 마을을 '풀뿌리 상권 성공'의 모범사례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전 9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반을 날아 도쿄에 도착했다. 다시 차로 3시간 반 가량을 달려 도착해 짐도 풀기 전에 취재수첩부터 펼쳤다. '이제 이곳의 성공 비결만 취재하면 된다.' 바로 기자의 각오였다.

그 비결은 마을 기차역인 이와무라다역에서 도심을 가로지른 도로 200m 거리 양편의 상점 곳곳에 숨겨져 있다.

도로를 놓고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점포들은 모두 아케이드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첫 번째 가게는 외벽을 밝은 파란색으로 화사하게 꾸며놓은 상가 입구의 은공예품 가게였다.

◇풀뿌리상권 흥행성공의 비결="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젊은 여사장의 목소리가 청량한 맛을 남겼다. 여사장은 "미리 주문하면 나만을 위한 액세서리도 만들어준다"고 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였다. 옆 가게는 수제 미소(일본된장) 가게였다. 역시 된장이라고 하기엔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포장된 수제 미소가 나무바구니 안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작고 예쁜, 정말 일본 가게구나'. 수첩에 적고 나니 공허하다. 그래서? 풀뿌리상권 흥행의 비결이 이게 다인가? 보통 5시 이후 문을 닫기 시작하는 상점들 취재를 놓칠까 바쁘게 돌아다니며 잊었던 피곤과 함께 실망이 밀려왔다. 숙소에 돌아와 '일본까지 왔는데 …'라는 걱정에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런 의구심과 불안은 아베 신이치 이와무라다혼마치상점가진흥조합 이사장과 만나면서 깨끗하게 풀렸다. 물론 그 과정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상점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상점가에 오면 즐겁고 좋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목표죠."

아베 이사장은 키가 크고, 덩치도 큰 50대 초반의 상인이었다.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스타일의 아베 이사장의 첫말이었다.

'손님에게 사랑받는 가게가 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일해 목표를 이룬 것이 비법이라니. 물을 마시니 갈증이 해소됐다는 말이잖아' 싶을 때 이사장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아베 이사장은 그 목표를 이루고 난 뒤 조합 산하 60여 상점들이 2000년 후반부터 경영난으로 폐업을 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고 자랑했다. 지금도 가끔 가게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 사정이나 가게를 키워 이사를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00년 된 상가의 쇠락=아베 이사장의 상가 성공 비결에 대한 긴 설명은 한편의 마을 역사 강의였다. 아베 이사장에 따르면 이와무라다 상점가의 역사는 1600년대 에도시대부터 시작된다. 이와무라다는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에서 에도(현 도쿄)로 가는 길목이었다. 다이묘들은 정기적으로 에도를 오가야 했기 때문에 중간기점인 이와무라다는 숙박업 등을 중심으로 상점가가 발달했다고 한다.

실제 이와무라다 상점가는 역사가 깊은 만큼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점포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수제 미소 가게와 수제 사케 전문점, 기모노 가게 등은 100년을 이어온 이와무라다 상점가의 터줏대감들이다.

"이와무라다 상점가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60~1970년대 일본 고도성장기 때죠" 아베 이사장의 말이다. 상점가를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건물로 변모했다고 한다. 상인들은 당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손님들이 찾아왔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이와무라다 마을에 먹구름이 덮쳤다. 1980년대 이후 일본 내 자동차 보급률이 늘고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면서 이와무라다 마을 상점의 매출이 줄어들었지만 상인들은 그 것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했다.

결정적 위기는 1997년 나가노 신칸센 개통과 함께 찾아왔다. 일본은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을 열면서 나가노까지 신칸센을 연장했다. 이와무라다 인근에도 신칸센 역 주변으로 대형쇼핑몰이 들어섰다.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는 대형마트에 상점가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이와무라다 상점가 42개 점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0개가량이 문을 닫았다. 남아 있던 상점가들의 매출도 70%나 곤두박질쳤다.

물론 위기를 맞아 이와무라다 상인들도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1996년 8월 상점가의 청년부들은 선배 상인들을 설득해 상인조합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이와무라다혼마치상점가진흥조합의 기초는 그때 만들어졌다.

◇반짝의 재기=한층 젊어진 조합은 곧바로 이벤트를 열어 일본 전역의 눈과 귀를 사로잡겠다는 야심 찬 아이디어를 내놨다. 일본에서 가장 긴 김밥 만들기, 일본에서 가장 긴 롤 케이크 만들기 등 1년 1차례씩 대형 이벤트를 추진했다.

처음 이벤트는 성공한 듯 보였다. 뉴스에서는 이와무라다 상점가가 만든 일본의 신기록을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일부 TV 프로그램에서는 이벤트를 연 이와무라다 상점가를 새로이 조명하기도 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상점은 외지인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노력이 근본적 해결 방법이 아님은 바로 드러났다. 이벤트는 일회성으로 끝났을 뿐 상점가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껏 공 들인 이벤트가 손님들을 모아주지 않으니 상인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조합 측은 이벤트를 중단했다. 처음 이벤트를 기획하고 시작한 지 6년 만이었다.

정말 이제 끝인가? 다행히 아직 상인조합원들은 젊었다. 조합을 중심으로 상인들은 공부를 시작했다. 전략이 있어야 상점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1년 반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이와무라다 상점가의 진짜 변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가노현(일본)=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글 싣는 순서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하)선진 외국서 배운다 (일본르포)
1 쇠락한 상권 일으킨 이와무라다 상인들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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