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相生, 무조건 나누기 아니다

[DT현장] 相生, 무조건 나누기 아니다
박정일 기자   comja77@dt.co.kr |   입력: 2018-08-30 18:15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相生, 무조건 나누기 아니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이번엔 정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더 성장해서 대기업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최근 한 반도체 대기업의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다.

그는 수요처인 대기업 연구원들이 직접 무엇이 필요한 지 정확히 짚어주고, 해당 대기업이 공유해 준 수백억원 규모의 장비를 활용해 직접 테스트를 하면서 단기간 내에 공정장비의 성능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의 성과를 본 외국계 경쟁업체들이 가격과 성능이 더 좋은 제품을 대기업에 제공해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지원해준 대기업 역시 이익을 얻는 '윈-윈' 효과가 발생했다고 자랑했다.

수년 동안 대·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한 토론회를 가면 언제나 나오는 결론은 "물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였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영 시스템의 차이가 너무 크고 수익모델도 다르기 때문에 현실화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고, 미국 실리콘 벨리 방식의 혁신 스타트업의 실제 성공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조직의 덩치가 커져서 쉽게 할 수 없는 역동적인 혁신을 중소기업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일어났던 벤처 붐이 꺼진 뒤 우리나라의 혁신 중소기업 생태계는 거의 망가졌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주목 받았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업체들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혁신 중소기업 파트너사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 업체의 경우에도 미세공정의 난이도로 인해 수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없는 한계에 임박해 있기 때문에, 소재·장비 업체들과의 협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원자재 업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콘텐츠나 서비스 등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시스템으로는 개인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신함을 따라할 수가 없다. 제도권 콘텐츠에 식상해 하는 젊은 소비층을 끌어 들이려면 독특하고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들을 확보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최근 동반성장, 상생경영을 앞다퉈 발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압박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필요해지고 있는 산업 지형의 변화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협력사의 도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혁신 역량과 노하우를 개방·공유하는 '혁신 생태계' 조성, 총 7000억원 규모의 '3차 협력사 전용펀드' 추가 조성 등 대규모 상생협력 계획을 내놓은 삼성 측 관계자는 그 이유로 "삼성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이미 성과로 검증한 사업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동반 성장 생태계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금액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대기업이 돈을 떼서 중소기업에 나눠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명분으로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종에 따라, 특히 일부 제조업에서는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가 정답이라는 것이 다수의 재계 인사들의 해법이다. 그렇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세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다. 경제, 산업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보기엔 변수가 너무 많고, 특히 중국 제조업의 부상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등 급변하는 세계 무역환경 등을 고려하면 무턱대고 '나누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균형과 조화의 정책이 아쉽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