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3류가 1류 핍박하는 시대

[DT현장] 3류가 1류 핍박하는 시대
김동욱 기자   east@dt.co.kr |   입력: 2018-08-28 18:00
김동욱 산업부 증권부동산팀장
[DT현장] 3류가 1류 핍박하는 시대
김동욱 산업부 증권부동산팀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 베이징에서 "정치는 4류, 행정관료는 3류, 기업은 2류" 라고 우리 사회를 평가했다. 발언 이후 삼성은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지만, 2018년에도 이 회장의 지적은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사례는 도처에서 찾을수 있다. 최근의 예를 들면 부동산 정책일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고강도의 8·2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주거복지로드맵과 보유세 개편, 신혼부부 희망타운 공급 등 시장을 뒤흔들 굵직한 정책을 연거푸 쏟아냈다. 과연 집값이 잡힐까 노심초사 했던 것도 잠시 싱가포르에 간 박원순 서울 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고 서울역∼용산역 철로 지하화 이후 그 위에 MICE(회의·관광·전시·이벤트) 단지와 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이었다. 박 시장의 발언 직후 시장에 나왔던 매물은 자취를 감추고 호가도 1억원 이상 뛰었다.

그러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황급하게 나섰다. 박 시장이 발표한 서울 여의도·용산 개발 방안에 대해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를 나타내며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며 제동을 걸은 것이다. 서울 부동산값이 계속 뛰자 박 시장은 "한 방에 개발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종합적 도시계획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며 진화에 나서면서도 여의도·용산 개발 의지를 계속해서 드러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한 달 반 만에 개발 추진을 없던 일로 돌려버렸다.

일년사이에 정부의 빈번한 부동산 규제 발표와 정책 혼선이 동시에 일어난 셈이었다.

현시점에서 부동산 시장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명백히 관리를 잘못한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말은 의기양양하게 꺼냈지만 정작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금까지는 주로 전 정권 탓을 하거나 언론 탓을 해왔다.

금융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 당·정·청에서 초대형 투자은행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책을 뒤집고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융감독원이 바이오산업을 들쑤시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지배구조를 손본다는 으름장을 내놓을 때마다 기업들은 움츠러든다.

기업들이 보유자금을 풀지 않는 이유가 언제 공정위와 국세청이 들이닥쳐서 벌금과 세금으로 거둬갈지 몰라 꼭 붙들고 있게 된다는 우스개 소리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정책을 결정하는 책임자들의 말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고 나중엔 어떤 말을 해도 안 먹히게 된다.

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사류 정치가 일류 기업들을 핍박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 정부는 금융을 버리지 않았다, 단지 금융이 뭔지 아예 모를 뿐"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외국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우리나라는 전체 증시 자금에서 외국인 투자금이 코스피의 36.25%, 코스닥의 11.35%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일상화된 정책 리스크에 9월에 미국이 금리를 한번 더 올린다면 외국인들은 위험성이 큰 한국 시장에서 미련없이 손 털고 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프랑스 루이14세 때의 재상 콜베르가 세금을 거둘 때는 거위도 모르게 살짝 거위털 뽑듯이 하라는 말을 남겼다.

정책집행은 정치, 경제적 분란을 만들지 말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라는 말이다. 요즘 정부는 공공연히 재정 확대를 외치며 기업과 유리지갑에서 '거위 털 뽑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런 정부를 시장에서 보고 있노라면 털 뽑기에 그치지 않고 배를 갈라 거위를 해체할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는 요즘이다.

김동욱 산업부 증권부동산팀장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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