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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칼럼] `폭염사회`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기자 jinye@dt.co.kr | 입력: 2018-08-12 18:00
[2018년 08월 13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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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 칼럼] `폭염사회`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예진수 선임기자
겨울 도시 모스크바가 가마솥처럼 달궈졌다. 2010년 러시아에서는 130년 만의 최악 폭염으로 1만5000명이 숨졌다. 그해 8월 기자는 모스크바 모터쇼를 취재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한여름에도 가을 날씨였던 모스크바에는 에어컨을 단 건물이 거의 없었다. 현지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폭염과 싸워야 했다. 시내를 걷다 보면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기사를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었다. 에어컨 대란이 빚어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폭염에 적응할 준비가 안 된 도시의 민낯이 드러났다.

가을 날씨를 기대했던 러시아에서 폭염을 만났지만, 한반도 역시 입추가 지났는데도 기록적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역량이 드러난다.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지난달 27일에야 폭염대책본부를 총력 체제로 바꿨다. 폭염 대응 매뉴얼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 부작용과 미중 무역전쟁발 해외 악재 등 여러 문제들이 뒤엉켜 답답한 상황에서 폭염은 경제에도 커다란 악재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 불리는 열악한 주거시설에 사는 1인 가구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95년 시카고 대폭염 때도 원룸의 취약계층이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그해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됐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를 거부했고, 시민들은 온열 피해로 갑자기 죽은 이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며칠 전 나온 신간 '폭염사회'(글항아리)의 저자인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폭염 자체만큼 위험한,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키운 실패의 원인을 '사회적 해부'를 통해 규명했다. 그는 수백 번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 축사라고 불릴 정도로 열악한 원룸에서 수백 명이 고독사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일본정부가 고령자나 취약계층에 에어컨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에어컨 복지'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시카고 대폭염의 교훈을 꿰뚫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대프리카'로 불릴 정도로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대구는 폭염 연구 메카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구시 주최로 대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열린 제3회 대구국제폭염대응 포럼에서는 폭염과 쿨 산업을 다뤘다. 온도측정센서, 열섬차단 쿨 루프 개발 등 폭염 대응 산업 육성, 센서를 활용한 폭염건강예보 체계 구축, 첨단 물순환 확대 기술 등 폭염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한 다양한 대안이 쏟아졌다. 통찰력과 직관력만 있다면 폭염조차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한국경제에 새롭고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분야에 투자자금과 창의적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권용석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구 서구 비산2·3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골목정원' 사례를 심층 조사했다. 서울도시연구 제18권 4호를 보면 권 연구위원의 설문조사 결과, 주민 주도로 추진된 골목 정원은 주민들이 한여름 더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이웃과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당초 기대했던 기온 저감보다 커뮤니티 활성화 측면에서 훨씬 더 많은 효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주민 주도로 폭염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사례다.

한반도를 거대한 열돔으로 만든 폭염을 계기로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개선할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폭염 사회는 우리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앞으로 기온이 1∼2도 정도 낮은 산지 주변의 집값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프랑스식의 긴 여름 휴가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공공의료 체계도 폭염 취약계층 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폭염이 상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응급 대응보다 국민안전과 성장동력 육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폭염 위기관리매뉴얼과 폭염 피해 보상 근거 마련은 물론 산업분야까지 포괄하는 치밀한 종합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냄비처럼 끓어올랐다 시간이 가면 용두사미가 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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