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제 칼럼]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이승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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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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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제 칼럼]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이승제 편집국장
주역(周易)에서 '천산돈(天山遯)' 괘 다음에 '뢰천대장(雷天大壯)' 괘가 온다. 천산돈은 반드시 물러나야 함을 가리킨다. 뢰천대장은 씩씩한 기상이다. 사물 발전에 있어 가장 좋은 단계다.

주역은 이처럼 극과 극의 맞닿아 있음을 밝힌다. 좋을 때일수록 삼가고 최악에서도 꺾이지 말라고 이른다. 치우침 없는 '중용(中庸)'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는 시련을 통해 스스로 경계하고 단련에 힘써야 한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커다란 고난 속에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한계, 나아가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곤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랬다.

최 회장은 2003년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실어증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나왔다. 대인기피증이란 루머도 돌았다.

오래지 않아 그는 이전과 사뭇 다른 행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지인들 중에 "내가 아는 최 회장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다소 샌님 같았던 그는 적극적인 스타일의 경영인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말을 충분히 듣되 결정의 시간이 오면 단호해졌다.

단련은 끝나지 않았다. 최 회장은 2013년 횡령 등 혐의로 다시 구속수감됐다. 2년 7개월을 복역한 뒤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두 번의 시련 사이에 최 회장은 명운을 건 승부수를 띄웠다.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기로 했다.

반도체 경험이 전혀 없고,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내부 경영진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회장은 인수를 강행했다. 2010년부터 반도체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직접 공부를 시작했다.

끝내 2012년 인수에 성공했지만 시장에선 "경험도 없이 무모하게 투자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최 회장은 오히려 과감했다. 인수 첫해에 3조8500억 원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SK하이닉스가 높이 날아올랐다. 2013년, 2014년, 2015년, 2017년 모두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8년 현재, SK하이닉스는 그룹의 최대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됐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90도 인사를 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 부회장은 인도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을 현지에서 만나 5초 남짓한 시간 동안 4차례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

사실 이 부회장은 '목 깁스' 수준까진 아니지만 상당히 절제된 목례에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고개를 깊이 숙여야 할 일이 얼마나 있었겠나.

이 부회장의 이날 행보는 석방 이후 첫 공식 일정이었다. 1년 동안의 구속수감에 이어 지난 2월 석방된 뒤 만난 첫 공식 인물이 문 대통령이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권력이 자본을 옥죄는 데 성공한 상징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회장의 행보에 시선을 둬야 한다. 1인 지하 만인 지상의 '황태자'로 거리낌 없이 살던 그가 1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통해 무엇을 잃고 얻었을까.

한동안 은신에 가까운 나날을 보냈던 이 부회장은 최근 적극적인 해외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를 다녀왔고 중국, 일본, 홍콩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가 무얼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게 강함은 아니다. 우리는 능력과 신분이 높은 위인들 중에 부드러운 허리를 지닌 인물이 유독 많았음을 안다.

일반적인 독방 면적 3.3㎡. 고 신영복 선생은 20년 동안 수감돼 있으면서 감히 넘보기 힘든 경지에 올랐다. 철학을 풀어내는 그의 글은 간결하면서 묵직하다. 극과 극은 통하고, 최대 불행은 최대 성취의 씨앗일 수 있다. 이 부회장도 그러하길 바란다. 아니, 그래야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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