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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30년 다닐 인재 막 뽑으시겠습니까

최경섭 경제금융증권부장 

입력: 2018-06-03 18:00
[2018년 06월 04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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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30년 다닐 인재 막 뽑으시겠습니까
최경섭 경제금융증권부장

채용비리 사태로 금융권이 한참 시끄럽던 당시, 한 은행의 고위 인사를 만났다.

관리와 인사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해당 임원은 다짜고짜 "금융권 인사시스템이 과거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특혜채용과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올 상반기 신규 채용과정부터 필기시험과 블라인드 면접을 사실상 거의 모든 은행에서 시행키로 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은행 총괄기구인 은행연합회가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만들어 이를 민간 은행들이 채택하는 방식이지만, 사실상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를 진두지휘한 금융당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다.

연합회가 제시한 채용 절차 기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줄 세우기'다. 사회 지도층에 의한 인사청탁 및 특혜를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채용의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모든 지원자를 획일적으로 한줄로 세울 것이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은행고시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일부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필기시험이 거의 모든 은행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서류전형, 면접 과정에서의 특혜, 차별을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 방식도 확대도입 된다. 채용 과정에서 부정청탁 및 특정 대학, 성별 가산점 부여가 불가능하도록 면접위원에 지원자의 신상과 관련한 개인정보가 차단된다. 사실상 목소리나 얼굴만 보고 지원자의 모든 것을 선발해야 한다.

은행권은 연합회가 만든 모범 규준을 각 회사에 반영해 빠르면 상반기 채용절차 때 부터 반영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이나 은행연합회는 내부적으로 채용비리 의혹을 벗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정작 은행 인사 담당자들은 제대로 된 인재들을 뽑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인사 담당자는 "말이 좋아 블라인드 면접이지, 지원자의 성장배경이나 캐릭터, 경력 등이 상당부분 배제된 상황에서 어떻게 인재를 걸러내라는 건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자칫 장님이 코끼리 발을 만지고 코끼리를 가려내야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고시 부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지원자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 뿐만 아니라 변별력을 계속 높이다 보면 시험 잘 보는 명문대 출신들만 걸러 질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각사별로 특유의 기업문화에 맞춰 추구해 온 인재상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은행권의 한 고위임원은 "대기업 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은행들도 그동안 수많은 성장과 시련을 겪으면서 독특한 인재상, 기업문화를 축적하고 있다"면서 "형평성만을 강조한 획일적인 인사채용 구조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차별화 된 인재들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한 집안에 사람을 들일 때도 그 사람의 됨됨이가 충족한지 또 그 집안의 문화와 맞는 사람인지 검증하고 또 검증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수천명, 수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은행이 새 사람을 들이는 일은 더 엄중한 절차와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채용비리를 원천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지원자들을 똑같은 잣대로 한 줄로 길게 줄을 세워 순번대로 자르거나, 장님이 코끼리 발을 만지는 식의 블라인드 면접만으로 인재들을 가려내기는 힘들 것이다.

중국 당나라때 관리들을 기용하기 위해 만든 신언서판(身言書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에까지 인재를 기용하는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 사람의 몸과 말, 글, 그리고 사물을 헤아리고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다 보고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 고위 임원이 나한테 반문하듯 물었다. "최 부장님이라면 30년 회사를 다닐 인재를 그냥 막 뽑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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