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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칼럼] 사람이 궁금하다

안경애 IT중기부장 

입력: 2018-05-13 18:00
[2018년 05월 14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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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칼럼] 사람이 궁금하다
안경애 IT중기부장

1948년 어느 봄날 이른 아침. 한 여인이 어린 두 아들을 양손에 잡고 막내를 임신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랫마을 재를 넘었다. 뒤로는 온갖 살림 보따리가 뒤따랐다. 그렇게 피난을 나선 이 여인은 4년여간 대구와 대전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 대전에서 6.25와 맞닥뜨렸고, 전쟁의 포화가 가시기 전인 1952년 안동 집으로 돌아왔다.

피난은 해방 후 폭발한 남남 이념갈등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을 한 종증조부들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에 눈뜬 할아버지는 도피생활을 하다 전쟁 중 아예 북으로 향했다. 큰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는 금쪽같은 큰아들과 가장을 못 볼 곳으로 보냈지만 일생 한을 드러내지 않고 사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사연 없는 집을 찾기 힘들었다.

스스로를 '조국 분단의 수인'이라고 칭한 작가 황석영 씨는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한 경우다.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서울로 내려와 전쟁을 맞았다. 격랑의 시기에 남북과 세계를 오가는 서사시적인 삶을 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작품에 녹여냈다.

거친 현대사를 거치며 우리 민족은 오랜 터전을 떠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 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지만 그 상흔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고목에 싹트듯이 상상도 못했던 해빙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70년 전 경험한 극적 변화와 정반대의 반전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도 있다. 오랫동안 묻어뒀던 상처를 꺼내 기억을 되살리고 끊어졌던 관계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잇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적다. 남북 평화체제 정착과 관련해 수많은 전망과 분석이 나오지만 남북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복잡한 국제정세와 정치적 역학구도에 대한 온간 난해한 계산식이 동원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이슈는 '사람'이다.

황석영 씨는 89년 남북작가회담 참석차 평양에 다녀온 경험을 엮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북한도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4월초 평양에 간 남한 예술단 취재진이 찍은 평양 시내 모습도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제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들도 우리와 같이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고 걸그룹 노래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들기도 했다. 평양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휴대폰이 필수품이 돼 가고 있고, 누구나 한국의 대중가요와 TV 프로그램을 즐긴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다를 것이다.

몇몇 리더가 길을 열 수는 있어도 결국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남북의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에 중심을 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역설적으로는 서로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리스크가 사람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디테일에서 악마가 나올 수 있다. 오랫동안 짓눌려있던 북한 주민들의 욕구가 폭발할 수 있고, 남한 내에서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

서로의 갈등과 낯섦을 누그러뜨리고 온도를 맞춰가기 위한 '스킨십' 정책은 아무리 정교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남과 북, 남한 내에서 서로에게 달았던 주홍글씨를 떼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철길을 놓고 도로를 뚫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 간에 막힌 길을 넓히기 위해 문화와 교육 같은 소프트 정책을 인내심 있게 펼쳐야 한다. 얽히고 엮여야 하는 게 남북의 운명이라면 그 길을 좀더 지혜롭게 가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황석영 작가가 작년에 펴낸 자서전 '수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앓고 나서 나는 이제야 내가 양손잡이였던 것을 깨닫는다. 이제는 양손을 벌려 포옹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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