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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길 잃어버린 대학입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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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시론] 길 잃어버린 대학입시 정책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국민 최대의 관심사인 대학입시 정책이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몽니만 부리면서 우왕좌왕하던 교육부가 느닷없이 모든 것을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겨 버렸다. 갑자기 무거운 숙제를 떠맡게 된 국가교육회의도 기막힌 꼼수를 찾아냈다. 허겁지겁 공론화위원회와 대입특위를 만들어 재하청을 줘버린 것이다. 결국 대학입시는 '공론화'라는 제대로 검증조차 되지 않은 어설픈 여론조사 방법으로 결정될 모양이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기꺼이 공론화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입시에는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선택지로 제시한 수시와 정시의 통합·분리, 상대·절대평가, 원점수 공개 여부는 교육의 근본 가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주변적인 것이다. 그런 정도의 선택으로는 교육의 근본 가치를 살려낼 수 없다.

실제로 우리의 대학입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뒤엉켜버린 난제 중의 난제다. 누구나 겉으로는 그럴듯한 '수월성'과 '기회의 평등'과 '공정'을 외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학입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절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이념들이 볼썽사납게 충돌하는 현장일 뿐이다. 모두가 하나만 잃으면 온 세상이 무너져버릴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그렇고, 고등학교와 대학이 그렇고, 심지어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갈등의 틈새에서 짭짤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사교육 업체들도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표에만 집착하는 정치까지 가세한 탓에 대학입시는 목불인견의 난장판이 돼버렸다.

교육부가 교육회의에 이송한 시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어긋나 버렸다. 수능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된 근본 원인은 2015년에 국사 필수화와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핑계로 내세웠던 '문·이과 통합'이었다. 그런데 교육부의 시안에는 이미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있는 문·이과 통합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진단이 틀리면 온전한 치유는 기대할 수 없다.

교육회의가 선택한 공론화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작년 신고리5·6호기의 경험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국무총리령으로 시행한 공론화는 국회가 정해놓은 법률들을 송두리째 무시한 탈법적 경험이었다. 법치가 살아있는 나라다운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나마 20대와 30대 청년들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덕분에 파국은 면할 수 있었다. 대법관 출신의 공론화위원장도 공정하지 못했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민참여단의 의견이 13.3%뿐이었다는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해버렸다.

공론화는 1988년 스탠퍼드 대학의 언론학자가 고안한 여론조사 방법일 뿐이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논의한다'는 숙의(deliberation)를 도입해서 단순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공론화의 학술적 효용성이나 사회적 유용성은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공론화는 환상일 뿐이다. 숙의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학입시처럼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에도 합리적인 공론화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급하게 서둘러 일을 망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냉정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는 대학입시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21세기에 맞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어설픈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엉터리 교육 전문가들도 멀리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어떠한 전문성도 찾을 수 없는 코드 인사로 채워진 교육회의는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계를 드러낸 교육부의 해체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라도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근본 가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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