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647) 공정한 평가

계량화된 성과평가 연구 왜곡
과학자 창의력·윤리의식 마비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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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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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47) 공정한 평가

평가 만능의 시대다. 모든 것이 평가로 결정된다. 평가는 능력에 따라 공평한 기회와 보상을 보장해주려는 노력이다. 세상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고 믿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평가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평가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과도한 부담을 주고, 엉뚱한 부작용과 후유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합리한 평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 버리고, 사회의 활기를 사라지게 만든다.

평가의 절차와 방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평가의 기준·절차와 함께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고, 평가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면 절차적 공정성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평가의 부작용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평가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단순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평가의 구체적인 목표와 내용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코브라 효과'라는 것이 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의 경험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브라가 주민과 가축에게 끼치는 피해를 걱정하던 영국 정부가 코브라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곧바로 코브라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규모로 코브라를 사육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현상금 제도를 폐지하자 코브라의 수가 과거보다 더 늘어나버렸다. 쓸모가 없어진 코브라를 야생에 풀어줘 버렸기 때문이었다.

'들쥐 꼬리 효과'라는 것도 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던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하노이의 하수구에서 활개를 치는 들쥐를 박멸하기 위해 들쥐의 꼬리를 잘라오는 사람들에게 현상금을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꼬리가 잘린 들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꼬리를 자른 후에 들쥐를 죽이는 대신 하수구에 놓아줬던 것이다. 꼬리가 잘린 쥐들이 살아남아 새끼를 낳으면 더 많은 현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평가에서 나타나는 코브라와 들쥐 꼬리 효과는 심각하다. 수능에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선택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순진한 노력이 제도적으로 사라진 문·이과 구분 교육을 더욱 심각하게 고착화시키고, 사교육에 날개를 달아줘 버렸다. 절대평가와 학습부담 경감을 앞세운 공허한 구호와 꿈과 희망을 강요하는 학종이 그나마 남아있는 수능의 뿌리를 위협하고 있다.

대학도 엉망이 돼버렸다. 세계화 시대에는 영어가 필수이고, 무엇이든 하나만 잘 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주장이 문제였다. 대학은 온통 영어시험과 스펙 쌓기 각축장으로 변해버렸다. 정형화·계량화된 성과평가가 교수들의 연구를 왜곡시키고, 교육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게 만들어버렸다.

과학기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비의 규모와 논문의 수에 의존하는 경직되고 계량화된 평가가 과학자의 창의력을 말살시키고, 윤리 의식을 마비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과학자를 단순한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과학기술 발전은 과욕이고 환상이다. 창업과 프로젝트에 지친 대학원 학생들이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찾겠다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다.

기업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성만 강조하는 입사시험부터 목표를 상실해버렸다. 정부가 강요하는 블라인드 평가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응시자의 전문성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오로지 얄팍한 시사·상식과 장기자랑으로 변질된 면접이 전부다. 불합리한 입사시험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는 대학 교육의 부실을 탓할 자격이 없다. 연봉과 승진을 위한 평가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관료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체불명의 객관식 선발 시험은 유능한 인재의 선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량진 학원가를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다. 야전군식의 순환보직 관행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는 무의미한 것이다.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평가가 필요하다. 객관식 출제와 계량화된 평가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평가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공정한 평가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도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평가는 버려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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