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이덕환의 과학세상] (644) 중장기 기본계획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20년 계획 수두룩 … 정권 교체마다 '흔들'
사회환경 변화 반영 기간·절차 개선해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탄소문화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44) 중장기 기본계획


정부가 정기적으로 수립하는 중장기 기본계획이 넘쳐난다.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중장기 기본계획을 법제화한 '기본법'만 해도 무려 67개나 된다. 실제로 정부가 정기적으로 수립하는 기본계획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런데 적지 않은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서 애써 만든 기본계획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정권에 따라 정책 방향이 근본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2008년의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핵심은 '녹색성장'이었다. 2030년까지 탈석유로 에너지 자립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화려한 녹색성장의 꿈은 5년 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2013년에 만들었던 제2차 기본계획도 다시 풍전등화의 신세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가 불투명한 '에너지 전환'이 대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구조를 실현해서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에너지법의 꿈은 공허한 것이 었던 셈이다.

절차와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부실한 기본계획도 많다. 작년 연말에 확정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그렇다. 전기사업법·에너지법·원자력진흥법 등에 분명하게 정해놓은 절차들이 통째로 무시됐다. 심지어 정책 결정의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은 공청회조차 제대로 개최하지 않았다. GDP 산정의 기준을 변경한 사실도 고려하지 못했고, 통일에 대한 준비도 없었다.

졸속으로 만든 기본계획은 출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전력의 수요전망은 황당할 정도로 엉터리였고, 전력 생산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없을 것이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믿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록적인 한파 탓이었다는 산업부의 변명은 구차했다. 그 정도의 불확실성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기본계획은 비현실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정책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민주적 정권 교체의 현실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적 합의를 무시하고 부처에서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기본계획이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고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기본계획의 기간을 정권의 재임 기간으로 분명하게 한정하는 것이 예산 낭비와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는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

수많은 기본계획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투자와 장기간의 준비가 필요한 에너지나 전력수급 정책에 대한 중장기 기본계획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기본계획·인성교육기본계획·인문학 및 인문정신진흥기본법처럼 선언적 의미조차 찾기 어려운 기본계획이 훨씬 더 많다. 실제로 정부 가 애써 만들고 있는 기본계획 중에는 기본계획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정부의 모든 부처의 모든 업무에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본계획이 공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수의 관료와 전문가들을 동원해야 한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무의미한 기본계획에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절차와 내용도 개선해야 한다. 기본계획이 집단이기주의에 오염될 가능성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관료들의 이기주의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있는 관료와 전문가들을 엄격하게 검증해서 확실하게 배제시켜야 한다. 편협한 이기주의에 오염된 기본계획의 폐해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미래 예측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10년 후의 정책 환경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중장기 기본계획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구체적인 중장기 계획은 결국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라게 된다.

정책의 안정성·지속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환경 변화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유연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부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