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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학술지에 ‘가짜 논문’ 기승… 신종상술의 유혹

과학 근거없는 글 해적학술지 범람
취업·승진에 악용 사례 늘어 '골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입력: 2018-02-27 18:00
[2018년 02월 28일자 1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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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학술지에 ‘가짜 논문’ 기승… 신종상술의 유혹


가짜 논문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신종 상술이 등장했다. 진짜 과학 논문의 내용을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저질 논문의 내용을 크게 과장하는 경우는 많았다. 쇼닥터와 같은 엉터리 전문가들의 전형적인 행태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온라인 '해적' 학술지에 실어놓은 가짜 논문으로 소비자를 속이겠다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다. 과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고약한 일이다.

가짜 논문(fake paper)은 과학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글을 논문 형식으로 그럴 듯하게 편집해놓은 것이다. 내용만 엉터리가 아니다. 저자와 저자의 소속기관까지 몽땅 조작해버리기도 한다. 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엉터리 소문을 그럴듯한 뉴스 형식으로 편집해놓은 가짜 뉴스(fake news)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은 ICT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엉뚱한 부작용이다.

가짜 논문은 온라인 해적(海賊)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통해 확산된다. 고액의 투고료나 등록비를 내기만 하면 어떠한 내용의 글이라도 논문의 형식으로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다. 학술지의 발행기관이나 학술대회의 개최기관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캐나다 오타와의 일간지인 '오타와 시티즌'(1845년 창간)은 작년 3월에 가짜 논문과 해적 학술대회에 대한 탐사 보도를 했다. 인도의 'OMICS 인터내셔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의도적으로 준비한 엉터리 논문 2편을 제출했다. '돼지가 하늘을 나는 바이오메커니즘'과 '바다 밑에 서식하는 조류(鳥類)'에 대한 논문은 내용·저자·소속기관·연구지원기관을 모두 조작한 가짜 논문이었다. 놀랍게도 두 논문이 모두 전문 평가자들에 의해 '초청논문'으로 평가받았고, 999달러의 등록비를 납부하면 '초청연사'로 논문을 발표했다는 기록을 만들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타와 시티즌에 따르면, OMICS(인도)와 WASET(터키)과 같은 고약한 기업들이 전 세계 유명 도시에서 매년 수 천 회의 '해적'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해적' 학술지도 발간한다. 콜로라도 대학교의 제프리 비올 교수가 확인한 해적 학술지는 1000여 종이 넘는다. 과학기술계에서 인정하는 SCI 등재 학술지의 1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게르마늄 팔찌 효능을 밝혔다는 논문은 '약학연구세계학술지'(WJPR)라는 학술지의 2017년 11월 '특별호'에 실린 것이다. WJPR은 공식 학술지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2017년 11월의 특별호는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문 검색 엔진에서 찾을 수 없다. 게르마늄 팔찌 논문은 상당한 투고료를 받고 실어준 유령 논문이라는 뜻이다.

'완벽한 건강법'이라는 어설픈 제목의 영어 논문은 'German'이라는 국가에 있다는 '성요셉병원'의 '게르마늄연구소 의학과'에 근무하는 '루카스 본'이라는 의사가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영어 국가명은 'Germany'이다. 더욱이 독일에서는 성요셉병원을 찾을 수 없고, 루카스 본이 과학 분야의 학술논문을 발표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특정 기업이 '가장 효과적인 게르마늄 장신구의 가장 유명한 제조사'라는 결론은 이해 상충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정식 과학논문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결론이다.

해적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되는 가짜 논문은 전 세계 과학기술계의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가짜 논문을 취업이나 승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해적 학술지나 학술대회 때문에 낭비되는 연구비의 규모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짜 논문을 일일이 가려낼 수도 없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직접 가짜 논문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짜 논문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고약한 상술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소비자가 의학적 효능으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광고를 금지하는 '약사법'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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