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시론] 일관성 있는 과기정책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01/2018012602102351607001[1].jpg "[시론] 일관성 있는 과기정책 필요하다")
이러한 와중에 진행되고 있는 출연연 기관장 인사에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새 정부의 인사에는 그 정부의 국정 철학과 방향성이 담기기 마련이고 마땅히 그에 대한 최적의 인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정책에 있어서 국정철학과 방향성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처럼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아인슈타인과 핵무기 개발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과 제국주의의 시대를 지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물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인류의 복지를 더 증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와 원천기술의 개발은 몇 명의 뛰어난 과학자가 몇 년간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중력파 검출만 봐도 그렇다. 전 세계의 연구진들이 함께 모여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력파를 검출해 냈다. 이런 시대에는 새 술을 꼭 새 부대에 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다. 일관되고 안정적인 과학기술정책과 이에 따라 연구자가 장기적으로 소신껏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어김없이 CES가 열렸다. 많은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가전제품 박람회에는 전 세계를 선도하는 최신기술들과 온갖 신기한 첨단 제품들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필자는 매년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 아이디어와 제품들이 과연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그리고 매년 내리는 결론은 '자율성과 창의'다. 그렇다면 자율성과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필자는 감히 정책적인 일관성과 안정성에서 온다고 말하고 싶다. 정책적인 일관성은 한 기관장이 오래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관장이 자주 바뀐다면 정책적 연속성이 짧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진짜 문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과학기술정책이다. 연구자들이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스템, 창의적 연구결과나 성실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논문과 특허의 숫자만으로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획일적이고 정량적인 시스템은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이러한 혼선은 퍼스트무버형 연구성과는 물론 국가의 미래성장동력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성장에 토대가 되는 과감한 규제혁신이 이뤄져야한다. 새로운 기술들과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과감하게 없애야할 것이다. 과감한 규제혁신을 통한 건전한 연구생태계의 조성은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연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것이다.
우수한 연구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실패와 그러한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경험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만들어진다. 그런 만큼 과학기술계는 이 분야를 잘 아는 경험 있고 역량 있는 리더들이 필요하다.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플랜을 수립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풍토를 구축해야 한다. 새 시대가 열렸다. 새 시대를 담을 새 정책을 논의할 때다. 아울러 일관성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하다. 과학기술 강국의 반열에 오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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