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국가 진로의 `내비`는 없는가](http://contents.dt.co.kr/images/201710/20171019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국가 진로의 `내비`는 없는가")
지난해 1월 일주일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여행했다. 자유여행을 하면 렌터카는 훌륭한 여행안내원이다. 내비게이션 덕이다. 흔히 줄여서 내비라고 불리는 이 길 안내 장치는 현대인의 나침반이다. 목적지의 전화번호만 찍으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더욱이 일본, 하와이, LA 등 주요도시에서는 우리말 내비가 제공되고 있으니,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이 내비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계속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에 붙어 있던 내비는 스마트폰으로 옮겨와서 한층 똑똑해지고 있다. 운전자들의 주행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동 구간별 예상 소요시간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제 길 안내 외에도 주변 맛집과 주유소, 관광지, 숙박업소까지 찾게 해준다. 출발시간과 목적지를 입력하면 T맵이 수집한 과거의 교통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상 소요 시간을 알려주는 '언제 갈까' 기능도 매우 유용하다.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상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면 종이지도와 표지판, 나침반에 의존했다. 1920년대 영국에서는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 다발을 손목시계처럼 만들어서 갖고 다녔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1981년 일본 혼다자동차에서 개발한 '일렉트로 자이로케이터'가 효시다. 지도 필름이 장착된 기계에 운전자가 현재 위치를 찍으면 나침반을 이용해 목적지의 방향을 불빛으로 비추는 형태였다고 하는데 오차범위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대중화에 실패했다(동아일보, 2017. 1. 14).
1985년 미국 자동차 용품제조사 이택(Etak)이 세계 최초로 오늘날과 같은 전자식 내비게이션 '이택 내비게이터'를 개발했다. 이것은 전자나침반과 바퀴 달린 센서로 작동했다. 그 뒤 군사용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이용을 민간에 허용하면서 내비의 상용화가 본격화됐다. GPS란 1970년대 초 미국이 군사 목적으로 24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전세계를 거미줄처럼 실시간 체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2000년이래 민간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현대오토넷이 자동차 매립형(built-in) 제품을 처음 출시했다. 모든 전자제품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 기술은 진보하고 값은 저렴해진다. 소프트웨어인 전자지도와 하드웨어인 단말기로 구성된 내비는 오늘날 차량용 항법장치, 등산, 골프와 같은 레져뿐 아니라 물류 추적장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동통신사들도 휴대전화기의 위치확인 기능을 이용해 지도안내, 음식점 찾기, 숙박업소 검색, 친구 찾기 등 다양한 서비스 개발에 힘써 왔는데, 손목시계 속에 넣을 수 있는 12밀리 크기의 GPS모듈의 개발이 국내 위치정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의 모멘텀이 되었다.
내비(navi)는 물론 내비게이션(navigation)의 약어다. 항해라는 뜻을 가진 navigation은 배, 비행기, 자동차의 항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길도우미라는 의미로 내비, 또는 내비게이션은 올바른 영어표현이 아니다. navigation system, 혹은 navigation device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선박과 항공기의 운항사를 navigator라고 하듯 차라리 GPS navigator가 영어답다.
모든 운전기사는 트럭에 내비를 달고 있다(The drivers all have GPS in their trucks). 내 차에는 내비가 없다(I don't have a GPS in my car). 이 두 문장에서 보듯 콩글리시 내비는 영어로 GPS라고 한다. 지피에스 내비게이터, 또는 지피에스 디바이스라고 하면 너무 기니까 간단히 GPS라고 부르게 됐다. 경제는 뒷걸음치고 외교는 샌드위치된 국가의 진로를 안내할 똑똑한 GPS는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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