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성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
![[DT광장] 아태지역 장애인에게 희망을](http://contents.dt.co.kr/images/201704/2017042502102351607001[1].jpg "[DT광장] 아태지역 장애인에게 희망을")
"저는 다행히 오토바이를 지원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일자리도 구했습니다. 가족들과 외출도 하고 있고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한 치비농 국립직업재활센터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뚜떼 씨. 밝고 힘찬 목소리로 보아 서른 초반쯤 됐을까? 악수를 청하는 내 손을 반갑게 맞잡으며 옆에 있는 아내와 어린 아들 손까지 잡아끌어 내 손 위에 포갠다.
지난해 말,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추진하고 있는 '직업재활훈련을 통한 인도네시아 장애인 자립지원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을 때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비장애인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체적 장애로 이동하는데 제약이 큰 장애인의 형편은 불문가지다.뚜떼 씨가 자랑하는 오토바이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오토바이에 좌우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설치하고, 그 밑에 보조바퀴를 달아 사람도 타고 짐도 나를 수 있게 개조한 것이었다. 또한 사고로 양 다리가 절단된 뚜떼 씨를 위해 모든 기기를 손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문득 70, 8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다. 불과 20~30년 전 우리나라 장애인들도 각자에 맞게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버스도 있고 택시도 있던 시절이었지만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환경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만든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에 태어난 우리 또래들은 미군 뒤를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고, 구호품으로 온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1984년 초, 벼락 맞듯 당한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시각장애를 안고 살아온 지 삼십년이 훌쩍 넘었다. 내가 처음 장애를 입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장애인복지에 대한 관련법과 제도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개선돼, 앞을 전혀 못 보는 중증시각장애인인 내가 정부산하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받아 활동하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의 복지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한다.
초기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는 해외에서 파견된 선교사 등 종교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뒤를 이어 개도국에서 개발사업을 펼치던 해외 원조기관들의 다양한 지원은 장애인복지 발전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과거 우리는 해외 원조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시설을 짓고,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일본과 미국 등 복지 선진국의 장애인 정책을 배우고 흡수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에스캅(UNESCAP·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과 협력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아·태지역 6억5000만 장애인의 권익증진을 위한 '인천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인천전략은 전 세계 장애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빈곤층인 아·태지역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유엔 에스캅 62개 회원국이 공동으로 정한 목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인천전략의 이행을 위해 우리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몽골, 라오스, 인도네시아, 인도, 네팔 등 아태지역 국가의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여 개발 프로젝트 실시, 초청연수, 물품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을 추진하며 여러 국가의 정부관계자와 장애인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만난 그들은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부러워하고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정책을 배우고 갔다. 그리고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국의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인천전략의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중간평가를 위한 고위급회담이 12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다. 중간평가는 그동안 추진경과를 점검하고 향후 보다 나은 사업 추진을 위한 개선점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인천전략 주도국으로서 대한민국이 그동안 진행한 각국과의 협력사업도 공유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뚜떼 씨는 해외원조기관으로부터 받은 오토바이가 있어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인천전략이 마무리되는 2022년 이후, 아·태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기억에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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