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태창직물로 시작된 유착
산업 전 영역서 정권마다 이어져
권력 비호 없인 기업생존 어려워
고속 성장 뒤엔 각종 부패 '만연'
한국, 부패인식지수 '52위' 그쳐
"권력서 독립 자생적 경쟁력 갖춰
글로벌 수준의 경영 투명성 확보
세계적 기업 성장 신뢰 구축해야"
산업 전 영역서 정권마다 이어져
권력 비호 없인 기업생존 어려워
고속 성장 뒤엔 각종 부패 '만연'
한국, 부패인식지수 '52위' 그쳐
"권력서 독립 자생적 경쟁력 갖춰
글로벌 수준의 경영 투명성 확보
세계적 기업 성장 신뢰 구축해야"
포스트 탄핵 - 경제ㆍ산업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면서 반세기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진 정경유착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권력에 돈을 대주고 비호를 받던 과거의 경영방식이 사실상 무너지면서 재계는 경영 혁신 작업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12일 법조계와 재계는 헌재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의 출연금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주요 탄핵 사유로 언급함에 따라 앞으로 정치권에 대한 대기업의 소위 '연줄 대기'가 원천 봉쇄될 것으로 보고 있다. 헌재는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할 때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의 설립, 최서원(최순실)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23조 1항과 기업 경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15조를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50년이 넘는 뿌리 깊은 권력과 기업 간의 정경유착 역사를 끊을 수 있는 계기를 헌재가 마련한 것이다.
정권과 기업이 결탁하는 정경유착의 역사는 대한민국과 같이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경유착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광복 후 태창직물을 운영하던 백낙승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70만원(현재 약 30억원 수준)의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기업 인수 등에 특혜를 받은 때부터다. 이후 삼성에 한일·상업·조흥은행을 몰아줬던 은행 민영화 특혜사건을 비롯해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등 산업 전 영역에 걸쳐 굵직한 정권유착 사건이 발생했다. 명성그룹 사건과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 한보 비리, 세풍 사건, 김현철 게이트, 박연차 로비, 저축은행 비리 등 정권마다 각종 비리가 이어졌다.
이번 탄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해 이완구 전 국무총리,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여권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해운대 엘시티 사업 비리 의혹 역시 박근혜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비리가 주기적으로 이어졌던 이유는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국가 주도로 경제를 성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수출 중심 사업화 정책으로 가다 보니 권력에 줄을 대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경영환경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재벌을 중심으로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반대로 각종 부패도 만연했다. 최근 한국투명성기구가 조사한 2016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76개국 가운데 52위에 그쳤다.
일본의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흉내 내 만든 전국경제인연합 역시 정경유착의 산물이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 재단 모금 사건 역시 전경련이 주도했는데, 이 과정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정권과 유착관계를 이어가야만 하는 굴레에서 벗어난 재계는 혁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이 80~90%에 이르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우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추지 않으면 브랜드와 신인도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실제로 전경련은 해체까지 고려한 쇄신안을 검토 중이고, 삼성과 SK는 10억원 이상 출연금이나 후원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등의 투명성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LG도 국내·외 사례를 고려해 투명한 기부금 집행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사외이사 영업 등 경영 투명성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해묵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며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환경을 고려할 때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투명경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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