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베스트 드레서 혹은 `패션 테러리스트`](http://contents.dt.co.kr/images/201701/20170112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베스트 드레서 혹은 `패션 테러리스트`")
'세련된 연대 스타일? 요즘엔 고대생도 패셔니스타'(중앙, 2016. 9.20)라는 제하의 기사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패셔니스타(fashionista)는 패션 디자이너, 혹은 '옷 잘 입는 멋장이'(a fashion designer or, a person who is always dressed in a fashionable way)를 부르는 말이다. 패셔니스타의 영어표기는 fashionista다. fashion에 ist를 붙인 말이겠거니 잘못 아는 사람이 있지만, 이런 말은 애초에 없다.
우리는 옷차림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이나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패션은 정치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뉴스에서 그들의 능력이나 정책, 비전보다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핸드백과 신발, 브로치 따위를 즐겨 다루는 경향이 있다. 메이 총리와 메르켈 총리가 만나면 회담의 의제와 성과에 대해서 평가하기에 앞서 "메이의 옷차림이 메르켈의 특색 없는 재킷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고 쓰는 식이다.
요즘 TV와 신문에 지겹도록 등장하고 있는 국정농단 최순실 스캔들의 주역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유라 패딩은 어느 브랜드? 최순실 신발-장시호 점퍼에 이어 화제"(동아, 2017. 1. 7)라고 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의 패션에 열광하는 씁쓸한 유행을 '블레임 룩(blame look)'이라고 하는데, 비난(blame)과 외양(look)을 합성한 신조어다. 이 경우 look은 패션과 동의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성정치인들은 항상 그들의 외모와 패션으로 동일시된다.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외교무대에서 '브로치'로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했듯이 여성정치인은 패션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로 여성정치인의 옷과 액세서리는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이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이 영향을 받았는지 박근혜 대통령도 패션정치, 패션외교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정치인들에게 패션은 전략인가? 대통령의 '팔색조'외교 행각을 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 '옷갈아 입기'에 바쁘다. "박대통령은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하늘색 셔츠에 남색바지 정장을 입었다. 과거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이나 붉은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었다. 전날 개회식 때도 박대통령은 빨간색 옷을 입고 시주석과 인사를 나눴다. 작년까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이나 노란색 계통을 입었다. 그러던 박대통령은 올 4월 시주석을 만날 때 처음으로 파란색 계통의 옷을 선택했다. 박대통령은 대부분 바지정장을 입는데, 행사 종류에 따라 주로 입는 재킷 색깔이 다르다. 안보 등 무거운 주제의 행사 때는 짙은 파란색 계열을 자주 입는다"(조선일보, 2016. 9. 6).
"깃을 세운 짙은 남색 재킷 바지 정장"을 두고 '전투복' 드레스 코드라고 한다. 박대통령은 오래 전 '공주패션'으로 베스트 드레서(best dresser)에 선정됐고, 앙드레 김으로부터 "굉장히 지적(知的)이고 교양미 넘치는 의상"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스타일 리스트 박대통령이 지금 시련을 겪고 있다. 세월호 7시간 중에 머리손질을 얼마 동안 했길래 아이들 구조를 적시에 못했느냐, 그 많은 옷값은 누가 냈느냐가 논란거리다. 연합뉴스에 실린 사진을 분석한 과거 자료(당대표 시절)에 따르면 3년간 133벌의 다른 옷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고, 의상비는 대체로 2억원으로 추정됐다.
"옷은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고 진화해 왔다. 근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는 패션이란 말은 창조하다, 만들다라는 뜻의 라틴어 파티오(fatio)에서 왔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물건에 부여됐던 이 말을 패션산업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패션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패션은 문화의 얼굴이자 그 시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강태진 저, '패션-공학을 입다'에서).
원래 옷은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발명됐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진화했다. 또한 옷은 속내를 위장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교양과 지성, 그리고 인간미를 갖추지 못한 사람일수록 값비싼 치장으로 자신의 텅빈 내면을 은폐시킨다. 우리 주변에는 소위 패션졸부(fashion victim)들이 넘쳐난다. 최신 유행옷을 입었지만 품격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속물들을 패션졸부라고 부른다.
옷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무능과 독선을 감추기 위해서 올림머리에 똑같은 스타일의, 중국 옷도 아닌, 인민복도 아닌, 그렇다고 군복도 아닌 "깃 세운 의상"을 입었다면 그는 베스트 드레서가 아니라, 패션 테러리스트(fashion terrorist)라고 해야 마땅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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