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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공유경제, 혁신인가 `위장`인가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입력: 2017-01-05 17:00
[2017년 01월 06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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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공유경제, 혁신인가 `위장`인가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2008년 세계는 디지털기술이 금융과 결합하며 위험기반 경제로 전개되는 역사가 어떤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바로 그 디지털 기술을 사회적 미디어로 변신시키는 새로운 기술 발전의 경로가 열렸다. 스마트폰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났다.

공유경제는 이미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 2006년 벤클러에 의해 디지털네트워크가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미래의 경제로 기대된 바 있다. 그는 디지털 공간 안에서 분산되고 느슨한 사회적 관계와 그에 기초한 사회적 공유경제는 자율성과 효율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전통적 공유경제의 치명적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경제로 모색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유경제는 그 이름이 함의하는 바와는 다른 현상을 낳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공유경제를 실질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플랫폼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순식간에 축적되고 집중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공유 플랫폼 기업 우버다. 우버는 공유경제를 실행하는 선구적 플랫폼 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 우버는 종업원도 설비도 또 자본 투자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제조업기반 초국적 기업과는 다른 면모다. 따라서 우버 같은 사업모델은 기존 기업활동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새로운 기업모델로 예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찬은 사태에 대한 표층적 관찰일 뿐이다. 기존의 기업 활동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단기에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단기에 폭증적 자본증식을 이루어내는 기업활동은 우버같은 기업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근대 자본주의 초기에도 발생했다. 좀바르트라는 20세기 초의 사회학자는 15세기와 16세기의 독일의 광산이 당시 무역패턴으로 100년간 벌어들여야 할 돈을 단 10년 만에 벌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버를 보면, 우버는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의 자본증식을 추구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이상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기업에 불과하다. 우버는 다른 새로운 혁신적 가치, 예를 들면 경쟁 대신 협력 혹은 공유와 같은 가치를 창조한다기보다는 기존의 기업 활동의 행태를 최적화된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위버가 주목되는 이유는 창업한지 불과 몇 년 만에 천문학적 기업 가치를 기록하는 거대 초국적 기업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자동차 공유 서비스업체 집카(Zipcar)의 경우도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집카는 Avis라는 기존의 초국적 렌트카 기업에 인수당하며 기존의 경제체제로 흡수됐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유경제가 그 기존 경제의 구도 속으로 포획됨으로써 오히려 그 기존 경제가 야기했던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촉발하고 있다. 실로 우버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의 창업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를 단시간에 축적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플랫폼에서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단순 일용 계약직으로 그 경제적 위상이 추락해 미미한 수입만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공유경제는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파트타임과 저임금의 일용계약직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노동과 관련하여 심각한 위험을 동반한다. 플랫폼기업을 통해 일하는 자들은 그 기업의 정규직원이 아니며 따라서 단체 노동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때문에 공유경제는 오히려 그 이름을 배반하며 초기 자본주의의 폐단을 부활시키는 경제로 퇴행할 위험이 있다. 현재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출현하고 있는 경제는 공유경제란 이름으로 위장돼서는 안된다. 오히려 일시 계약 일용 노동자, 프리케리아트(precariat)경제로 불려야 한다는 비판이 점증하고 있다. 급기야 공유경제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유경제란 용어의 허위성을 폭로하는데 이른다. 대표적으로 자사 로보 같은 독일의 유명 주간지 슈피켈(Spiegel)의 기술 관련 블로거는 공유경제가 사실상 플랫폼 자본주의의 한 전개양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반성하는 듯 했다. 특히 그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에서 협력적 소비와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떠오르며 역사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 그 희망의 촛불은 꺼진 것일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세상은 온통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로 시끄러울 뿐이다. 반면 현실을 보다 정의로운 경제로 혁신하려는 인간 지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필자가 과문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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