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원고만 읽는 `수첩공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17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원고만 읽는 `수첩공주`")
김영란법의 여파는 수능 떡까지 된서리를 맞게 했다. 오늘 전국적으로 일제히 수능고사가 치러진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에 청탁금지법까지 맞물려 수험생 격려 문화가 바뀌었다. "합격 떡, 합격 엿은 9월 28일 시행된 청탁금지법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단체 주문이 줄었기 때문이다"(동아일보, 2016.11. 16). 이베이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떡이나 엿의 빈자리를 공산품이 메우고 있는데 다이어리와 방석은 각각 880%, 296% 증가했다. 핫팩과 손난로도 153%가 늘었다고 한다. diary, 오늘은 <다이어리>에 대해 시비코자 한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선물이 캘린더와 다이어리다. 옛날 시골에서는 한 장짜리 달력이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달력을 벽에다 붙여놓고 농사일과 집안의 대소사를 챙겼다. 한 장짜리 달력의 한가운데에는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나 다음 선거에 나올 정치지망생의 얼굴이 들어가 있었다. 캘린더와 함께 거래처나 주요인사들에게 연말 선물로 나누어 주는 것이 다이어리다. 포켓용 소책자로 된 것과 책상용 신국판 사이즈가 대부분이다.
1)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날짜 별로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묶어놓은 것, 흔히 사무용으로 이용한다. 2)그날 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장부. 사전은 다이어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다이어리는 월별 달력, 일주일 단위의 메모, 주소록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또한 그와 관련된 간단한 메모도 함께 기재할수 있다. 영어 diary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일기장이 아니라 메모하기 좋은 포켓용 수첩이나 비망록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왔다.
For ordinary desk jockeys, a planner is a must-have. On most workdays, I keep a small planner with me at all times. It is useful to me in many ways(평범한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다이어리는 필수품이다. 대부분 근무일에 나는 작은 다이어리를 갖고 다닌다. 이것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이처럼 우리가 말하는 다이어리는 diary가 아니라 planner이다. 플래너는 notebook, reminder book, 또는 pocket notebook과 같은 뜻이다. schedule book도 우리의 다이어리에 해당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첩공주'라고 부른다. 메모를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너무 메모에 집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의 석상에서 말씀을 받아 쓰지 않으면, "머리가 그렇게 좋으세요?" 말하면서 레이저 광선을 쏜다면 그것은 독재자의 모습이다. dictator(독재자)는 '받아 쓰게 하는 자'라는 의미 아닌가.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만났을 때, 오바마가 뭔가를 말했다. 이제 박 대통령이 말해야 할 차례인데, 박은 고개를 숙인채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이때 비서관이 "대통령님!" 하고 긴급히 부른다. 하지만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던 박은 오바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딱하게도 박 대통령은 상대방 질문이 뭔지 기억도 못하네요). 오바마의 코멘트에 국민들이 부끄럽다.
지난 4년 우리는 박 대통령이 정부 책임자와 국정을 논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을 보면 준비된 원고를 읽고 나면 그만이다. 마치 유신시대의 '유시(諭示)'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청와대 참모회의를 뉴스에 공개하는 일에 의아심이 생긴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aide에 지나지 않는데 이들을 언론에 공개해서 국무회의를 무력화시키는 연유를 알 수 없다. 어찌됐건 프롬프터를 이렇게 사랑한 대통령은 역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prompter는 원래 연기자나 프로그램 진행자가 대사를 읽고 연기할 수있도록 고안된 장치인데, 연설이나 회의 시 보고 읽는데 활용되고 있다.
다이어리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다이어리는 콩글리시다. Oxford사전은 다이어리를 personal organizer(물론 organiser라고 해도 된다)라고 알려준다. A small file with loose sheets of papers in which you write down information, addresses, what you have arranged to do, etc.(정보, 주소, 해야할 일 등을 기록해두는 종이 묶음 책자).기록은 소중한 것이지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그냥 적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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