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영국 정부가 BBB(영국기업은행)를 설립해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통합하고자 했을 때, 이들은 놀라운 연구결과에 직면했다. "1990년대 이래 중소기업 지원 정책: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눈길을 끄는 보고서는 영국의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영국 정부의 사업 지원은 정당성, 효과성, 효율성 면에서 모두 지지받지 못한다. 중소기업 사업체당 지원 금액은 연간 2100 파운드(한화 약 370만원)에 이르나, 이 금액을 각각의 기업에게 배분해 주는 것과 비교해 중소기업 지원사업 정책이 그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당시 영국정부가 시행하는 중소기업 관련 사업은 모두 891개에 이르렀다. 이후 영국 정부는 BBB 설립과 함께 민간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을 정책금융의 목표로 설정한다.
이것이 비단 영국만의 예외적인 문제일까. 중소기업 지원사업이라면 흔히 거론되는 부분이 '판로지원', 조금 더 나아가면 '수출지원', 이어서 '자금지원', '컨설팅', 조금 더 전문적 분야라면 'R&D 지원' 등이다. 지원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분야는 망라하고 있고, 정책마다 접근하는 방식이나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유사하다 보니 중소기업 관련 정책이라면 소관부처나 명칭만 다소 상이할 뿐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성격이 유사하다보니 이 사업의 아이디어가 저 사업에서 쓰이고, 이 사업의 지원 대상이 저 사업의 지원 대상과 겹치면서 사업마다 차별성과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관건이 되고 있다. 이른바 지원 사업의 홍수이다. 이 때문에 한 쪽에서는 지원사업의 정비와 효율화를 강조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지원사업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입증하느라 분주하다.
지원은 성과를 전제로 한다. 특히 공공정책의 특성상 성과는 지표화되어야 하고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흔히 사용되는 것이 매출액증가율, 이익증가율, 고용증가율 등과 같은 성과 측정 지표이다. 이 사업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고, 지원 받은 기업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입증하고 역설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로투원과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근원적인 혁신이 아닌, 부분적인 개선, 언제든 경쟁자의 침입을 허용할 수 있는 근소한 우위의 제공, 이런 것들이 얼마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까. "전세계의 지식을 디지털화하겠다", "화성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민간 벤처의 공상과도 같은 야심과 비교하면 "전년 대비 몇 %"란 너무 왜소하지 않은가.
이를 생각한다면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지원이 아니라 마음껏 기업할 수 있는 자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자본주의는 이익이 창출되는 곳에 수많은 경쟁자를 유인하고, 이들로 인해 이익이 고갈되면서 최초의 혁신이 보편적 지식으로 확산되고, 새로운 이익을 찾아 또다른 혁신이 등장하고, 이 같은 혁신이 다시 기존 산업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이 같은 자유와 도전을 마음껏 허용하는 곳에서 산업이 발전하고 창업이 융성하고 기업이 성장한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기득권의 소멸과 공정한 경쟁의 보장이다.
이쯤되면 중소기업 정책의 지향점도 바뀌어야 한다. 지원보다 더 시급한 것은 창업과 도전 정신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득권의 소멸과 모호한 규제의 철폐이다. 모든 정책은 지원에 앞서, 기존의 정책이 사업의 자유,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억누르고, 기득권 보호에 익숙한 것은 아닌지 성찰하여야 한다. 기득권이 개입한 독점, 반경쟁, 불공정은 강도나 절도, 사기에 필적하는 사회적 해악이다. 이는 비단 기업 관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공공관리, 교육, 의료, 노동 문제 등이 모두 이와 관련된다. 창조와 창의성이 강조된 지 4년 차, 이른바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상유지를 바라는 기득권이 창조적 정신을 숨막히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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