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ㆍ사회기술혁신연구단 단장
![[포럼] `사회문제 해결형 R&D` 확산돼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7/2016072802102251607002[1].jpg "[포럼] `사회문제 해결형 R&D` 확산돼야")
20년 뒤 한국 과학기술정책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2013년을 중요한 해로 기술할 것이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은 추격형 연구개발 시기에 형성된 연구개발사업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사업의 최우선 목표가 산업발전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고령화, 에너지·환경문제, 의료·복지문제, 재난·안전문제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사회문제를 다룬다. 미세먼지나 환경호르몬과 같은 문제도 물론 주요한 연구대상이 된다. 그 동안 연구개발은 연구자와 기업의 고유영역으로 간주됐는데 이제는 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연구개발이 수행되는 방식도 새롭다. 기획 단계부터 사회문제를 기술혁신과 연계하는 사회·기술 통합기획이 진행된다. 사회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기획과정에 참여한다. 또 개발된 기술이 사회에 널리 활용·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 측면도 고려한다. 규제, 안전성 문제, 공공구매 등에 대해 검토해서 기술 활용·확산에 필요한 제도개선 활동도 수행한다.
백미는 리빙랩(Living Lab) 방식의 운영이다. 현실 생활공간에서 최종 사용자와 연구자가 함께 제품을 개발하고 실증·평가하는 개방형 혁신모델을 활용한다. 연구자도 모르고, 기업도 잘 모르며, 사용자 본인도 애매해하는 사회적 니즈를 구체화하고, 사용자의 경험을 활용해 문제해결에 적합한 기술을 구현한다. 산·학·연의 '삼중나선'을 넘어 민·산·학·연이라는 '사중나선'이 만들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이야말로 R&D혁신의 표본이다.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춰 사용자 참여와 리빙랩을 통해 기술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실제 경제적·사회적 효과는 크지 않다고 비판받는 연구개발사업을 문제해결중심·수요중심으로 변화시키는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과학기술의 사회적 정당성을 높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기술은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아울러 성공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서 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특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은 현재 정체되어 있는 상태다. 기존의 관성 때문이다. 산업분야와 함께 성장해온 과학기술 생태계에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다. 사회문제 해결형 사업은 메르스나 미세먼지 등 사회문제가 부각됐을 때만 의제화되고 곧 관심이 사그라드는 경향이 있다. 또 투자를 관장하는 부서는 산업육성이나 경제적 성과를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따진다. 기술개발 중심의 평가제도는 연구자들이 문제해결보다는 논문·특허 등에 집중하게 한다. 연구자는 생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 검토나 최종 사용자와의 소통보다는 연구실 안에서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만을 선호한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존 연구개발의 타성을 깨뜨릴 수 있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사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는 없지만 사회문제 해결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그에 걸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 사업 발굴 단계부터 기획·운영·활용 단계까지 문제해결이라는 '목적'과 현장과의 소통이라는 '수단'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사업을 관리하는 공무원과 연구관리전문기관에는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고 연구현장에는 참고서가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아직 이 사업에 대한 지식축적이 부족하고,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사업을 사회운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문제해결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갖는 것이 사업 성패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자, 그리고 사용자들의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