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시론] `혁신 비즈니스`만이 살아 남는 시대](http://contents.dt.co.kr/images/201607/2016072202102351607001[1].jpg "[시론] `혁신 비즈니스`만이 살아 남는 시대")
뜨거운 여름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냈던 여름밤은 몇 번씩 찬물을 끼얹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고, 한낮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서둘러 그늘을 찾게 했다. 지금 우리는 에어컨과 달콤한 빙수 한 스푼으로 무더위와 열대야를 쉽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쾌적한 여름을 선사했던 과학기술은 미세먼지와 기후온난화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덥기는 했어도 산과 들에 생명이 무럭무럭 자랐고 개울가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했었다. 여름을 가득 채웠던 그 푸른 기운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과학기술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고대 희랍의 신(神) 아브락사스의 장난일까.
우리의 삶을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제가 4차 산업혁명이다. 올해 초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도 핵심 주제로 채택된 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기술(무인수송수단, 3D프린터, 첨단로봇)과 디지털 기술(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공유경제)에 생물학 기술(유전학, 합성생물학)을 융합하여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이미 독일은 'Industries 4.0'을, 미국은 'Remaking America'를, 일본은 '신산업구조비전'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제조업과 인터넷의 융합을 통해 제조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 '중국제조 2025'를 수립했다. 우리 과학기술계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미래기술 선점을 위해 국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어두운 측면을 면밀히 살피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과는 달리 일자리를 줄이는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향후 5년간 710만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새로 생길 일자리 수도 210만개에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일자리 형태도 변한다. 인터넷을 통해 파트타임으로 구인·구직이 이루어지고, 업무 단위로 일하며 보수를 받는 휴먼클라우드가 정착될 전망이다. 물론 노동의 유연성과 기회의 확대라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권리와 안정성이 극히 취약해지는 것을 우려하며 불안정성(precarious)과 최하층민(proletariat)을 조합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층의 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또한 국가·사회의 안보 취약성이 확대될 것이다. 3D프린터로 개인이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됐고, 인터넷에서 폭탄 제조 방법을 구할 수도 있다. 더욱이 불평등도 심화될 전망이다. 승자독식의 경향이 커지는 상황에서 혁신 생태계에 적합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소수만이 승자가 될 것이다. 더구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인해 정작 옆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은 한세대 전보다 40% 떨어졌다고 한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본성을 다루는 인문학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필자도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필수적이라 믿는다. 4차 산업혁명은 패스트피쉬와 슬로우피쉬간의 경쟁이라고 할 만큼 속력이 중요하다지만 올바른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인문학의 본격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사회제도 마련에 과학기술계가 동참하는 매커니즘이 필요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융합연구에 인문학과의 융합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같은 맥락이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최근 과학기술계의 혁신을 형상화하는 문구로 종종 인용되는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어지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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