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디지털산책] `소프트파워 문화강국` 만들어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7/2016072002102251607001[1].jpg "[디지털산책] `소프트파워 문화강국` 만들어야")
단단하고 강한 것은 쉽게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오히려 오래 간다. 단단한 게 강한 게 아니라 정말 강한 것은 유연한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서 말하는 '변화에 대한 적응'도 유연해야만 가능하다. 연륜과 지혜가 쌓일수록 사람들은 유연해진다. 유연한 사람은 직설적이고 고압적인 말투나 물리적 제재보다는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화술로 상대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인생을 살면서 체득하게 되는 진리 중 하나다. 미래 세상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세상은 점점 소프트해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정보통신분야도 초반기에는 하드웨어가 중요했지만 점점 소프트웨어가 주도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도 하드 파워가 아니라 소프트 파워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대의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교수는 2004년 <소프트파워(Soft Power)>란 책을 출간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말하는 소프트 파워란 군사력이나 경제적 제재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hard power)'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고전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힘(권력)을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라 정의했다. 물론 그 힘은 물리력, 군사력, 정치권력 등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까지 강대국의 힘은 군사력 위주의 하드 파워였다. 하지만 21세에도 그러할까. 그렇지 않다. 문화의 세기라 불리는 금세기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주도하고 있다. 하드파워는 부국강병을 지향하고, 소프트파워는 문화강대국을 지향한다. 문화는 교육·학문·예술·과학·기술 등 인간의 이성적, 감성적 능력에 기반하고 있는 창조적 산물과 관련된 분야를 말한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제기됐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하드 파워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정작 전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은 줄어들었다. 역사적으로 군사력에 의존했던 몽골제국이 피정복문화에 동화된 것, 국제관계사에서 민간차원 교류나 문화협력으로 적성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했던 것 등은 소프트 파워의 우월한 힘을 보여준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물리적 파워보다 보편적 문화나 정서적 공감 같은 것이 더 강력하다.
요즘 과학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과학외교도 소프트 파워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를 중심으로 과학계 리더들은 과학외교를 많이 강조한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AAAS 회장 제랄딘 리치몬드는 "과학기술은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돼야 한다. 정치와 종교로 인한 크고 작은 갈등도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될 수 있기에 우리가 초점을 두려는 것이 바로 과학외교"라며 미국 과학기술계가 과학외교에 앞장설 것임을 밝힌 바 있다. AAAS의 CEO인 러시 홀트 역시 과학외교의 열렬한 주창자로 유명하다. 물리학 박사이며 과학자 출신인 러시 홀트는 여덟 번이나 하원의원에 당선된 8선 관록의 정치인으로 과학을 통한 사회참여를 실천해오고 있다.
20세기까지의 국내외 질서는 주로 정치, 군사, 법 등 하드 파워에만 의존해왔다. 국제정치는 영토분쟁, 전쟁, 국가 간 힘겨루기 등 패권경쟁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하드 파워는 일시적이고 강압적이었기에 늘 불안한 상태였다. 오늘날 외교 형태는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드 디플로머시에서 소프트 디플로머시로 변화하고 있다. 교육외교, 과학외교, 문화외교 등 소프트한 정신적 측면의 교류가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딱딱한 외교보다는 NGO, 학회, 기관 등 민간 주도의 국제관계로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교육, 과학, 문화는 정신적인 영역으로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나 국가기구가 직접 나서서 협정을 맺고 국가 간의 협력을 하기 보다는 민간이나 과학자단체 등 비정부 섹터가 나서서 교류하며 신뢰를 쌓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드에서 소프트로, 정부에서 민간으로, 사물에서 사람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메가트렌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 미래에는 정치·군사·법 보다는 교육·과학·문화가 더 중요할 것이다. 미래의 강대국은 교육강국, 과학강국, 문화강국의 모습을 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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